성경공부와 큐티

온전케 할 수 없는 제물을 의지하려는가(히9:1-10)

되어지는대로 2023. 9. 15. 05:49

온전케 할 수 없는 제물을 의지하려는가(9:1-10)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땅에 세워진 첫 성막을 예로 든다. 두 번째 장막 안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다. “이 두 번째 장막 안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한 번 들어가는데 피가 없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장막은 이 세대를 위한 비유입니다. 이에 따라 드려진 제물은 제사하는 사람의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여러 가지 의식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개혁의 때까지 부과된 육체를 위한 규례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민들에게 부여된 제사의 모형과 예수의 참된 제사를, 그리고 양심을 생각한다.

 

   땅의 성전과 제사, 대제사장직은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앞에서의 제사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어진 것이다. 창조주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주권을 드러내며 사람의 죄인 됨과 속죄와 회개의 필요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규례를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다. 그러나 그 제사는 제사하는 자들의 양심을 온전케 하지 못했다.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했다. 주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땅에 오신 예수가 그리스도 사역을 통해 온전한 제물로서 자신을 드리셨다. 땅에 있는 지성소의 장막이 찢어졌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참 성소에 들어가셨다.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다. 제사하는 자들의 양심을 온전케 하셨다. 온전한 양심은 무엇일까? 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우치는 것이 아닐까? 마음과 뜻, 힘을 다해 주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할 선민이 육신의 이익에 집착하며 그 뜻을 거역하는 삶이 죄인 것을 아는 것이 양심이다. 그 양심이 없다면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십자가의 도를 따를 수 없다. 그러므로 여전히 세상과 육신에 매인 마음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에 연합할 수 없다. 주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그 나라와 그 뜻을 구할 수도 없다. 온전한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 계신 유일한 창조주 앞에서 피조된 세상의 어떤 이름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잘못된 양심은 종교적 전통과 조직, 등 피조된 땅의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며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있음과 선하심, 주권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도를 따라 그 절대 평강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서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와 그 뜻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나타나며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 영광을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오늘도 은혜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며 영생의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일용한 양식과 건강을 허락하시고 특히 그리스도의 나라를 향한 믿음과 소망을, 사랑을 더하여 주소서, 육신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아버지를 거역하는 죄에서 구원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늘의 아버지께 있습니다.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