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감사로 주께 제사하라(시50:1-15)

되어지는대로 2024. 3. 11. 06:46

감사로 주께 제사하라(50:1-15)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다윗 시대의 성가대장 아삽의 시다. 선민들을 꾸잦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다. 제물 때문이 아니다. 제사의 횟수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상번제를 드렸다. 많은 제물을 바치며 열심히 제사했을 것이다. 제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감사의 마음이 없었다. 우상에게 뇌물을 바치며 자기 소원을 이루려는 이방인들처럼 제사했다. 하나님은 소유를 늘려야 할 필요가 없는 분이다. 희생 제물에 굶주린 분도 아니다. 뇌물로 달래며 설득할 수도 없다. 책망의 이유는 그들이 감사로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의 근본은 감사다. 번제와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 모든 제사는 감사하는 태도로 드려야 한다. 마음에 부족함과 불평, 원망이 있다면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의 선하심과 옳으심과 주체성에 관한 믿음이, 그리고 사랑이 없는 것이다. 선민은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보이는 세상과 육신을 더 사랑하며 집착하는 자기를 죽이는 것이 본래 제사가 아니었나? 내 죄를 대신해서 바쳐지는 어린 양의 죽음을 보며 내 죄, 내 죽음을 고백하는 것이 주께서 받으시는 제사다. 그 본질을 잊고 이방 종교처럼 자기 뜻을 고집하는 뇌물로 주를 설득하며 이용하려는 것은 오히려 진노를 사는 제사가 아닐까? 이미 다윗 시대에도 그렇게 제사의 의미는 왜곡되고 있었다. 감사로 드리는 찬양과 기도가 주께서 원하시며, 또한 주를 영화롭게 하는 참된 예배일 것이다. 오늘 우리도 상번제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잊은 채 자기중심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 책망받을 종교 생활은 아닌가? 과연 나는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감사의 삶으로 예배하며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리는가? 당시 성가대의 책임자 아삽도 물질적 성공과 번영을 위해 하는 찬양이 아니라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감사로 찬양하기 위해 애쓰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며 은혜의 길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립니다. 이 시대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의식하며 마음을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며 그 은혜 안에서 그 뜻을 이루는 삶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주의 사랑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감사함으로 받을 때 모든 것이 선하며 주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오늘도 부패한 육성을 부인하며 어린 양이신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 안에서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