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들의 성벽 쌓기에 분노하는 사람들(느4:1-14)
예루살렘의 성벽 소식에 사마리아의 산발랏 등 주변 세력들이 분노한다. 암몬의 도비야는, 여우 한 마리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며 조롱했다. 아라비아, 아스돗 등의 지도자들도 훼방을 모의했다. 선민들도 일할 힘과 능력이 없다고 불평한다. 성 밖에 사는 유대인들도 찾아와 성벽을 쌓지 말라 한다. 느헤미야는 기도한다. 그리고 칼과 창, 활로 무장하고 일하라, 크고 두려우신 여호와를 기억하고 여러분과 가족을 위해 싸우라 명한다. 선민들의 성벽 쌓는 일에 왜 세상은 분노하며 방해할까?
그들은 히브리인, 즉 강을 건너온 민족이다.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율법과 성전 등 초월적인 역사를 가졌다. 예루살렘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다윗 왕국의 수도였다. 여호와 하나님의 장엄한 성전도 있다. 한때 중동의 최강국이었다. 그들이 다시 힘을 얻는 것은 주변의 권력자들에게 두려운 일이다. 영적인 관점에서 성벽 쌓기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세상의 영향력을 차단하며 스스로 구별됨, 곧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공감하며 합의하는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의 공동체를 경계한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광을 보지 않고 하늘에 시선을 두며 마음을 쏟는 자들을 싫어한다. 기득권층은 자기들의 평화와 안전이 깨질까 염려하며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분노하며 방해한다. 선민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고통스러운 인내와 순종의 일을 거부한다. 차라리 세상에 속한 종으로 살기 원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보이는 세상과 육신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그에게는 실제 현실이며 중요하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늘의 주께 접속하며 순종한다. 그는 백성들을 격려한다. 일으켜 세운다. 살아계신 주 하나님, 선민을 부르고 가르치고 징계하고 회복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주 하나님, 그 위대하심과 두려우심을 잊지 말라 외친다. 악한 적들과 싸우며 계속 성벽을 쌓으라 명한다. 그들은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강한 의지로 무장하고 성벽을 계속 쌓아 올렸다. 그 기세에 놀란 적들은 공격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거룩한 벽을 쌓고 있는가? 방해하며 조롱하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며 주의 살아계심과 그 말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을 정말 알고 믿는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어떤 분노와 훼방 앞에서도 담대한 믿음으로 대응할 것이다. 과연 마음에 영적인 벽을 쌓고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로 안을 채우는가? 여전히 세상의 것이 만족을 위해서 필요한가? 선민이라면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그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야 하지 않는가? 사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에 채운다면 결국 그 은혜는 밖으로 넘쳐 세상에서도 선을 이루지 않겠는가?
거룩하신 주 하나님,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나 주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질서와 결실, 광명의 세계로 이끄실 것을 믿습니다. 죄와 죽음의 저주에 찌든 인생들은 두려워하며 분노할 것이나 은혜를 입은 선민들은 환란을 이기며 선하신 뜻을 이룰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성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거듭나며 성령을 따를 것입니다. 오늘도 그 거룩의 길을 놓치지 않으며 시험을 이기게 하소서.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구원, 그 사랑과 기쁨, 인내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드러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공부와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 쌓기의 장애물, 세상이 주는 두려움(느6:1-14) (1) | 2024.09.10 |
---|---|
성벽 쌓기와 일용할 양식(느5장) (0) | 2024.09.09 |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느3:15-32) (0) | 2024.09.05 |
왜 성벽이 그들에게 절실할까(느3:1-14) (0) | 2024.09.04 |
그는 왜 밤에 나갔을까(느2:11-20) (1) | 2024.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