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 목자는 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까(요10:11-21)

되어지는대로 2025. 2. 5. 06:14

그 목자는 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까(10:11-2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니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나느니라...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아나니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이 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 삯꾼은 돈을 위해 양을 친다. 목숨을 걸고 양을 돌보지 않는다. 선한 목자는 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까?

 

선한 목자는 예수를, 양은 영생의 구원을 위해 택하신 성도를 의미한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안다. 양도 자기 목자를 알아본다.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를 아시고 예수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나와 너의 진실한 관계로서, 그 사이에 다른 어떤 대상도 없이 밀착해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감과 좋음,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타적인 사랑과 섬김이 가능하다. 예수는 이미 하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 그 좋음으로 만족하신다.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양들을 위해 극단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이 가능하다.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 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뜻이며 다시 살리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이 아닐까? 삯꾼도 자기를 위해 남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안에 넘치는 기쁨은 없다. 항상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결정적 위기 앞에서는 좌절하며 도망갈 것이다.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진실한 관계를 알지도 따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음은 그 십자가 연쇄 과정의 동선을 따라 세상과 육신에서 탈출해 주 예수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다. 무력한 양들의 선한 목자 예수처럼 저주받은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그는 세상에 대한 상실감도 미련도 없다. 부활의 나라, 영생의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그 영광을 안다. 그러므로 좌절도 절망도 없다. 참된 이웃 사랑도 할 수 있다. 기쁨과 만족을 위해 이웃에게 어떤 것도 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님 안에서 하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성도의 증거가 아닐까? 성도들은 그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은혜의 증인으로 세상의 이웃을 위해서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는다. 과연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정체성으로 사는가? 삯꾼인가 선한 목자인가? 여전히 마음에 불평과 원망이 있고 감사와 기쁨이 없다면 아직 주 예수와 하늘 아버지의 존재감과 사랑도, 천국의 좋음도 모르며 원하지도 않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를 위해 당신을 내어주신 주님 안에서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 그 영광의 나라에 마음이 이르며 지상의 몸으로는 그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선한 목자로 예수를 보내 이 땅의 죄와 저주에 갇힌 자녀들을 부르며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그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 보기에는 좁고 험하지만 세상의 어떤 길보다도 좋고 쉬우며 영생과 진리, 평강과 안식에 이르는 길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별세와 부활, 승천과 보좌 우편에 이르는 하늘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 증거하신 이 사랑과 은혜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아버지의 사랑을 등지는 악에서 구원하소서. 그 이름이 마음에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