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와 그의 선한 일을 믿지 않는 것이 신성모독이다(요10:32-42)

되어지는대로 2025. 2. 7. 06:22

그와 그의 선한 일을 믿지 않는 것이 신성모독이다(10:32-42)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거든 비록 너희가 나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며 돌로 쳐서 죽이려 한다. 무엇이 진짜 신성모독일까? 시편 82편과 함께 이 말씀을 묵상한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지존자의 아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82:6)” 창조주 하나님은 본래 사람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영적 존재로 지으셨다. 태초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며 에덴에서 영생을 누렸을 것이다. 범죄 후 그는 하나님과 끊어지고 저주받은 땅의 육체로 전락했다. 그렇게 인류는 제한된 시공간의 세상에서 육체로 살다가 죽는다. 독생자 예수는 그들의 회복, 곧 영생의 구원을 위해 죄와 죽음의 저주받은 땅에 인자로 오셨다. 저주에서 벗어나 본래의 영적 사람 됨을 회복하기 위해 예수를 믿고 그의 십자가 연쇄 사건에 연합하며 육체에 갇힌 자아의식이 자유를 얻어야 한다. 그의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을 따라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 독생자의 영광, 곧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예수께 연합하는 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며 초월자로 영생을 사는 길이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몸은 세상에 있으나 유일하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속성, 곧 절대 평강과 기쁨 안에서 육체를 초월하는 공생애를 살 수 있다. 그 일을 위해 예수가 인자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는다. 여전히 익숙한 율법주의와 선민의식, 세상의 가치관과 전통, 관습 등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다.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 생각과 뜻을 믿고 고집한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규정하며 시험하는 것이다. 자기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은 부정하며 거부한다. 그러나 그런 육의 삶이 바로 신성모독이 아닌가? 사랑과 은혜로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진짜 신성모독이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죽이고 그들의 세상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은 세상 탈출과 천국 진입의 길, 곧 영생의 구원을 보여주셨다. 그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의 자아의식을 유지하는 자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는 성령을 따라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며 신의 성품을,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죄와 저주 가운데 부패하며 죽어가는 육체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 존재감과 주권과 선하신 뜻이 드러나는 영생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세상에 와서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이 마음에서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우리 삶의 현장에 임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 우리 삶의 여정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일용할 영과 육의 양식으로 우리를 살게 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육신의 완악한 죄를 사하시고 더는 세상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다만 십자가의 주님을 잊고 아버지를 떠나는 악에서 구하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세상을 견디고 이기며 사랑하며 은혜를 나누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