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과 기쁨에 참여한다(요15:9-17)

되어지는대로 2025. 2. 24. 06:32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과 기쁨에 참여한다(15:9-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을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세 단계의 이어지는 사랑을 말씀하신다. 하늘 아버지의 사랑, 예수의 사랑, 제자들의 사랑이다. 하늘에서 시작하는 사랑과 기쁨, 믿음과 계명을 생각한다.

 

  부모의 자녀를 향한 내리사랑과 같은 느낌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사랑하셨다. 예수도 받은 사랑으로 땅에 내려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제자들은 아버지가 예수께 주신 자들이다. 끝까지 사랑하며 그리스도로서 십자가 연쇄 과정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다, 아버지의 사랑이 예수 안에서 넘쳐 제자들에게 흘러내렸다. 주님은 그들에게도 사랑하라 명하셨다. 계명을 지켜야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고 하셨다. 마치 계명을 지키는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말씀이다. 아버지와 아들 예수는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과 기쁨으로 밀착해 있다. 그 연합의 관계에서 계명은 당연히 지켜진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녀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스러운 행위, 예쁜 짓을 통해 그 기쁨이 더욱 증폭된다. 그처럼 계명도 사랑으로 주시는 것이며 자녀도 사랑과 기쁨으로 응답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그들이 기쁨을 유지하며 계속 연합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과 기쁨은 실제로 마음이 세상과 육신을 향한 욕망에서 떠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유지될 수 있다.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만 그 마음은 아버지의 영광을 온전히 보고 그 사랑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육신의 욕구와 만족을 추구한다면, 세상을 향한 소원과 미련에 집착하며 자기 주체성만을 고집한다면 계속되는 충돌과 갈등 속에 하나님과 천국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스도 예수도 사랑으로 십자가 별세와 부활의 하늘길을 열어주셨다. 제자들도 그 사랑과 기쁨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파했다.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 복음도, 신자의 삶도 사랑에 근거한다. 과연 오늘 우리는 그 사랑과 기쁨을 이루는 십자가 복음의 새 계명을 지키며 주님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소망을 두는가? 여전히 세상과 육신에 소망을 두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기복적, 율법적 종교인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가? 바울의 권면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가 오늘 우리 마음에도 밝히 보이며, 하늘 아버지와 주님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으로의 초대에 온전히 응할 수 있기를 감사하며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거룩한 말씀과 십자가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시며 영생과 진리의 세계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떠나 스스로 판단하며 자기를 고집하는 세상은 여전히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생명의 빛과 목자로 오신 주님을 따르면 참 평강과 안식을 누리며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에 참여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으로 주님이 앞서신 별세와 부활의 길을 바라봅니다. 성령으로 이끄소서. 그 사랑과 기쁨으로 죄와 죽음의 저주를, 시험과 환난을 이기게 하소서. 온전한 구원의 믿음과 소망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찬양하게 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과 기쁨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