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미워하는 선민들(막15:1-15)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유대인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전례대로 사면을 요구했다. 빌라도는 너희 유대의 왕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물었다. 그들은 바라바를 놓아 달라 했다. 바라바는 살인자다. 빌라도는 놀랐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사형을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예수를 미워했을까? 그는 세금 거부 등 반역을 시도한 적이 없다. 권력도 돈도 없었다. 그런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예수는 해롭지 않다. 불쌍한 청년일 뿐이다.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한 것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선민들이 왜 예수를 살인자보다 더 악하게 여기며 미워했을까?
총독이 파악한 그 이유 때문이다. 정치적 감각이 있는 자는 세상의 권력과 돈, 그리고 인기에 민감하다. 대중이 좋아하며 원하는 가치에 충실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가치를 부인한다. 세상의 흐름에 역행한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 한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고 물 위를 걸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갈망하는 세상의 가치와 영광에는 관심이 없다. 지혜의 말씀과 능력은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환경과 조건, 곧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을 개선해 주시지 않는다. 소수의 제자만 데리고 다니며 일부 사람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셨다. 기대가 컸던 선민들은 분노했다. 살인자 바라바보다 더 악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예수의 나라, 그의 의는 세상과 다르다. 타락한 세상과 육신의 가치관과 시대의 풍조에 동조하지 않는다. 다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 권력과 돈, 명성 등 세상이 인정하고 좋아하는 가치와 기준을 위해 마음과 뜻과 힘을 쓰지 않는다. 예수의 복음을 믿는 자는 세상과 육신을 향한 욕구가 살아있는 자기를 날마다 부인하며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세상에 대해 함께 죽는다. 세상의 좋음, 육신에 의존하는 자기를 부인하며 하늘에 계신 창조주, 영원히 그리고 지금 살아계시며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늘의 아버지를 사랑하며 소망한다.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그 사랑과 기쁨, 그 영광을 발견할 것이다. 세상에 없는 참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선하신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은혜를 나누는 공생애를 살 것이다. 이 시대에도 세상과 육신에 집착하는 종교 지도자, 선민의식에 젖은 유대인들 같은 신자들이 있을 것이다. 과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런 세속적인 종교인들과 다를까? 나는 어떤 바램으로 무엇을 찾고 구하는가? 주님의 기도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기를 정말 원하는가? 오늘도 세상과 육신의 길에서 마음을 돌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하늘 구원의 길에 이르기를 소원한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혼돈과 공허, 어둠의 땅에 생명의 말씀과 빛이신 주님을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세상과 십자가 주님 사이에서 오직 주님을 택하며 그 사랑과 은혜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생의 나라와 아버지를 소망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빛, 그 은혜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성령으로 이끄소서. 영광의 나라를 보게 하소서. 존귀와 영광과 능력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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