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같은 현장, 다른 상황 인식(민14:1-10)

되어지는대로 2025. 4. 21. 06:06

같은 현장, 다른 상황 인식(14:1-10)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가까이 도착했다. 12명의 정탐꾼울 보냈다.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왔다. 그 땅은 좋으나 그곳의 민족은 크고 강했다.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다고 열 명의 정탐꾼이 보고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보고했다. 군중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열 명의 말을 믿고 좌절했다. 울며 부르짖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원망을 쏟아냈다. 모세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군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 죽이려 했다. 어떤 판단이 옳은 것일까?

 

  가나안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곳의 사람들도 크고 강했다. 전설 속의 거인족 같다. 오합지졸인 이스라엘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탐꾼들이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며 판단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드러난 현실에 절망했다. 후회와 원망에 휩싸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그 약속의 말씀과 권능을 자기 현실에 적용하지 않았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정탐꾼도 같은 현장을 보았다. 다르게 판단했다. 우리의 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분노한 군중은 두 사람을 죽이려 했다. 놀랍게도 모두 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선민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세상의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불평했다. 전지전능하신 하늘의 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모세를 비롯해 아주 적은 숫자였다. 모세는 선민들의 완악한 말과 행동 앞에서 좌절하며 엎드러졌다. 오늘 우리도 다수의 판단이 옳다고 믿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신자들 사이에도 현장의 상황 인식과 판단이 서로 다르다. 온전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 입으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전히 세상과 육체의 가치와 기준으로 생각하며 자기 판단과 소원만을 고집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선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영생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자로 오셨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길을 따르라 하셨다. 부모와 형제, 처자, 재산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하셨다. 주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나는 늘 십자가를 지고 다닌다. 세상에 대해 나는 죽었고 내 안에는 주님이 사신다고 고백했다. 그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고 여전히 세상의 기준, 곧 돈과 권력, 명성 등이 있어야만 성공이며 행복할 것이라 고집한다면, 당시 선민들처럼 불신과 재앙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담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세상의 판단과 저주를 이기며 하늘의 은혜와 권능 아래 살 수 있기를 오늘도 소원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너희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하신 것은 모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그 주권을 적용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놓치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지한 것입니다. 선민의 역사를 통해 체질적인 불신앙과 완악함을 드러내신 것은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 권능의 주권을 소망합니다. 그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기 원합니다. 이 은혜의 길, 곧 믿음과 소망으로 얻는 성도의 새 현실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하나님을 등지는 악에서 구원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