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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0일 오전 08:46

되어지는대로 2020. 3. 10. 08:46

선민의 증오(요19:1-16)

본문에서 빌라도와 유대인들이 대조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빌라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살리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 유대인들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친다. 미친 듯이 이방인도 꺼리는 증오와 살인의 행위를 요구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은혜를 아는 그들이 왜 이리 악한 모습을 보일까?

이혼은 결혼한 부부가 하는 특권이다. 사랑과 기쁨을 나눈 사람들이 더 증오의 감정에 빠질 수 있다. 아마도 기대와 다른 상대방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주도권, 혹은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선민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를 탈출해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자유를 얻자마자 그들은 불평과 원망을 한다. 하나님과 싸우기 시작한다. 기대에 부합하는, 마음에 드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바꾸려 하신다. 거룩과 경건을 위해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감사와 기쁨의 예배자로서 사랑과 공의의 공동체를 세우라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인생의 주권을 내려놓지 않는다. 내 욕망이 마땅한 권리라 주장하며 불평한다.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더 좋아한다. 창조주의 비전에는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지 않는다. 실망한다. 속았다고 생각하며 증오한다. 원하던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의 손길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늘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자기중심적 정의와 사랑, 이기심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 세대도 예수를 죽인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과연 나는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며 내 마음을, 내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고 있는가?

은혜의 하나님, 악한 육신의 길을 따르며 죄와 사망으로 치닫는 인류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과 성화의 역사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삶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를 보이시며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악한 이기심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성령을 따라 합당한 예배와 찬양을 올리기 원합니다. 탐욕과 정욕을 버리고 거룩한 자녀의 온전한 길을 보게 하소서. 말씀과 성령으로 이끄시는 성화의 여정을 담대히 따르게 하소서. 겸손히 말씀에 순종할 때 충만한 기쁨과 만족의 공동체, 그 나라를 이루는 것을 알게 하소서,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