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어 아는 크고 은밀한 일?(렘33:1-12)
본문은 기도할 때 응답을 기대하며,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내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네게 알려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부르짖지 않았을 리가 없다. 성전에서 수많은 희생 제사를 드리고 울부짖으며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다. 본문의 부르짖음과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씀은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하셨다. 그는 나라의 멸망을 앞두고 큰 상심과 두려움 속에 있었다. 부르짖어 기도했을 것이다. 바벨론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달라 했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결사항전하려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겠다고 하신다. 처참한 시체가 쌓이고 멸망을 당하며, 그 성이 황폐해진다 말씀하신다. 그러나 희망의 예언도 주셨다.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그 황폐한 땅에 다시 기쁨의 소리, 감사의 찬양이 들릴 것이다. 다윗의 가지가 나오고 그가 의를 행할 것이라 하신다(15). 메시야가 오시고 구원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결국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은 미래에 오실 메시야로 인한 구원과 회복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죄의 용서, 거룩한 백성의 회복이다. 그러나 멸망과 황폐함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는 나라를 위한 기도는 더 이상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물었을 것이다. 모든 판단을 버리고 그저 은혜를 구했을 것이다. 일을 만드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알 수 없는 새로운 구원을 행하실 것이다. 오늘 내가 알아야 할 크고 은밀한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부르짖을까? 모든 생각과 소원마저 버리고 온 마음을 십자가의 주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본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는 무엇을 부르짖는가? 땅의 풍요와 번영, 그것을 위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닌가? 그것은 썩어질 것을 사랑하고 그런 것들에 마음을 쓰며 내 기쁨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 죄라며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는 말씀이 아닐까? 결국 내 육신의 생각이 버려지고 황폐해질 때 그 위에서 새롭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 크고 은밀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세상과 육신은 끊임없이 쇠락하며 종말을 향해간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자는 영원한 평강과 기쁨 안에 있을 것이다.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 무한한 사랑과 지혜, 능력으로 만물을 통치하시고 구원하시며 새롭게하심을 찬양합니다. 주의 거룩하신 이름과 뜻이 이 땅에서 주의 자녀들 가운데 증거되고 성취될 것입니다. 악하고 무능한 삶이 뿌리채 뽑히고 버려지고 황폐해질 때, 주의 섭리의 손길이 우리를 새롭게 심고 세우시며 거룩한 나라, 영생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원과 성화의 여정에서 흔들리지 않기 원합니다. 주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채우소서, 강건한 신자의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오늘을 이기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순종으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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