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영원한 생명(요일1:1-10)
태초의 영원한 생명이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도록 땅에 오셨다. 직접 그 생명을 경험한 사도 요한이 사람들에게 증언한다.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위한 것이다. 그 사귐으로 모두 함께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며 서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려는 것이다. 그 생명은 예수님이시다. 육신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의 영원한 생명이시다. 유일하신 참 생명이시다. 생명은 무엇일까? 살아있는 모든 것이 생명이 아닌가? 영원한 생명을 묵상한다.
살아있다고 모두 생명은 아닌 것 같다. 사도는 죽고 썩어질 것을 생명이라 하지 않는다.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생명은 그저 목숨일 뿐이다. 양식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육신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과 함께 마음이 주어졌다. 그 마음도 양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양식을 받는 마음이 살아있는 마음이다.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마음은 생명이 아니다. 육신의 목숨만 살아있을 뿐이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그 마음이 채워질 때 그가 생명이며 본래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 그 결과로 참된 기쁨, 절대 평강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이는 땅의 것으로 충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갔다.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것을 소원하며 죄와 사망의 길을 간다. 그러므로 참 생명이신 주님이 보이는 대상으로 오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부한다. 마음이 육신의 욕망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육신을 죽이고 부활의 새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주셨다. 오늘 나는 단지 살아있는 육신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가? 여전히 세상의 돈과 권세, 명예 등을 생명이며 기쁨이라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참 생명이신 주님을 사귐으로 참된 기쁨을 누리고 증거하며 사는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비로소 그 마음이 육신을 떠나 하나님께 이를 수 있음을 아는가?
영원의 주 하나님. 생명이신 주를 떠나 죄와 사망의 길을 걷는 자녀들에게 영생과 진리의 그리스도를 몸으로 알 수 있도록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충만한 사랑과 의의 하늘 영광으로 부르시고 거룩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이 참 생명,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미혹된 육신을 넘어 부활과 승천의 길을 따라 주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의 선하신 뜻, 그 사랑이 우리 가운데 성취되게 하소서. 오직 주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주의 나라가 드러나며 주를 찬양하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공부와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하지 않는 자...(요일3:11-24) (0) | 2021.01.05 |
---|---|
하나님의 자녀, 마귀의 자녀(요일2:28-3:10) (0) | 2021.01.04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벧후3:10-18) (0) | 2020.12.31 |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벧후3:1-9) (0) | 2020.12.30 |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벧후2:12-22) . (0) | 2020.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