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좌절...(스9:1-15)
성전을 재건하고 감사의 제사도 드렸다. 선민의 나라, 이스라엘의 부흥을 위한 에스라의 열정과 소원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관리들이 보고한다. 제사장 등 선민들이 가나안의 관습을 따르며 이방의 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고 있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에스라는 낙담하며 좌절한다. 성전과 제사법 등 좋은 하드웨어와 제도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시대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이방과의 혼인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그 혼인은 그 땅 이웃들과의 연합을 상징한다. 과연 그들은 세상과 단절해야 할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경고하셨다. 그 땅에는 부정한 민족들의 가증하고 더러운 문화가 가득하니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 하셨다. 부패한 관습을 받아들이며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혼인은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받아들이며 그들과 섞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단지 풍요와 번영을 위해 각종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과의 연합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선민들이 세상과 단절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신다. 단지 그들의 죄악에 동화되며 끌려가지 않기를 원하신다. 오히려 악한 세상 사람들을 끌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데려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그럴 위치에 서지 못했다. 성전의 생활화를 하지 못했다. 상번제를 드리지만 여전히 우상의 제사에 가까운 믿음이다. 이방과 똑같이 세상과 육체에 밀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세상으로 끌려가고 말 것이다.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취하며 주께 범죄하지 않았던가? 부모와 처자, 형제, 네 몸까지 미워하며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먼저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천국 자녀의 정체성을 얻어야 한다. 과연 오늘 우리의 정체성이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주권, 그 생각과 뜻에 온전히 연결되었는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이방 문화와의 무분별한 접속은 위험한 시도가 아니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마음이 피조된 세상의 것에 꽂히며 갈망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죄인 것을 배웁니다. 우리 마음에는 오직 유일하게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이름만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주권과 뜻이 성취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바른 태도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과 육체의 죄에 물들지 않으며 순수한 믿음과 소망으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늘 아버지의 주권과 뜻에 우리의 마음이 닿게 하소서.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오직 아버지께 듣고 본 것만을 말하고 행하며 아버지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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