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려운 애도..(삼하1:17-27)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다. 애도를 위해 ‘활의 노래’를 지었다. “이스라엘아, 너희 지도자들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 용사들이 쓰러져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위해서 울라...” 그는 진심으로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다. 사울은 그를 죽이려 했다.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왜 이리 슬퍼할까? 뛰어난 감성, 좋은 성품 때문일까?
그의 생각은 세상의 상식이나 논리와 다르다. 세상의 관점으로 그는 기뻐서 춤을 춰야 한다. 사울의 죽음으로 그의 인생에 서광이 비쳤다. 마침내 전환점을 돌았다. 이제 귀국해서 왕위에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야 한다. 어리석은 나발의 죽음으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찬양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뻐하며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울며 깊은 슬픔의 노래를 부른다. 왜 그럴까? 그는 자신에게 원수처럼 대했던 사울을 기억하지 않는다. 육신이 아니라 주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의 죽음을 의식한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하여 기름 부으신 사람이다. 그를 향한 분명한 뜻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셨다. 그러나 그는 그 부름에 온전히 응답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기회를 선용하지 못했다. 본인에게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도, 그리고 하나님께도 아프고 슬픈 일이다. 안타까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그도 슬퍼한다.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세상과 육신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주의 마음께 닿았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는 세상과 육체의 현실이 아니라 주의 거룩한 이름과 그 뜻이, 자신이 직면하는 현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며 무엇을 보고 있는가? 과연 나는 부르신 자의 뜻과 목적을, 그리고 보내진 자의 소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세상은 여전히 이기적이며 오만한 사람들의 분노와 증오의 아우성, 또한 그로 말미암은 죄와 죽음으로 가득하다. 악한 세상과 인생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슬픔을 과연 나는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긍휼과 사랑으로 짓고 보존하시며 이끄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택하심과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시험에 걸려 쓰러지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오래 참으시는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미천한 인생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성령의 감동과 내주하심으로 구원의 문을 새롭게 열어주심을 믿습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 그 십자가의 은혜를 오늘도 의지하며 악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찾으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강건한 믿음과 소망으로 슬픔과 낙심을 이기며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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