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동족상잔, 원한의 잉태(삼하2:12-32)

되어지는대로 2023. 4. 13. 05:55

동족상잔, 원한의 잉태(삼하2:12-32)

 

   이스라엘의 내전이다. 아브넬과 사울의 신하들이 모였다. 요압과 다윗의 부하들도 모였다. 아브넬이 제안한다. “청년들을 뽑아 겨루게 하자.” 12명씩 뽑았다. 치열한 싸움 끝에 다윗의 부하들이 이겼다. 그러나 전투는 전면전으로 번진 것 같다.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에게 달려들었다. 아브넬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청년과 싸우라 외치며 피했다. 그러나 아사헬은 계속 그를 쫓았다. 결국 아사헬은 아브넬에게 찔려 죽는다. 분노한 요압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 죽이려 한다. 아브넬이 외친다. “언제까지 그 칼이 사람을 집어삼켜야 하는가? 이 일이 고통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야 부하들에게 형제들을 쫓지 말라 명하겠느냐?” 그 말에 요압이 추격을 멈췄다. 헤브론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에서 다윗의 존재감은 없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윗은 헤브론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명령은 나오지 않는다. 동족상잔의 내전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아브넬이 시작하고 다윗은 방어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어만 할 수는 없다. 형제들이 죽는 전쟁에서 사람은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원한이 원한을 낳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한다. 아브넬은 왜 내전을 일으켰을까? 놀라운 것은 그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비난하는 이스보셋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다윗에게 나라를 바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삼하3:9). 그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자신과 사울의 신하들의 기득권 때문일까? 정치적, 경제적 이권 등을 내려놓기 싫어서가 아닐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대로 살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세상과 육체에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본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만 밀착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세상을 위해 세우신 본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세상, 타락한 육신에 갇힌 인간은 스스로 헤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주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함께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야 한다. 부활의 주님을 따라 마음은 하늘의 아버지께 드리고 육신은 하늘에서 오신 성령을 따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오늘도 아브넬과 아사헬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원한을 반복하며 죽음에 이르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기를 소원한다.

 

   만유의 주 하나님, 세상과 인생을 지으시고 사랑과 공의의 길로 이끄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태초의 불순종과 이어지는 죄로 인류는 사망의 저주 가운데 태어나고 죽습니다.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하늘 공동체의 기쁨에 연합하도록 구원의 역사를 베푸심을 믿습니다. 여전히 육신에 매인 채 죄와 죽음의 길을 고집하는 악함을 용서하소서. 3차원의 물질 세상과 육신에 눈이 멀어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 참 생명과 진리를 보고 듣기 원합니다. 하늘 아버지와 영원한 세계,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