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이와 므비보셋의 차이(삼하19:16-30)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온다.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가 다윗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왔다. 베냐민 사람들과 함께 강가에서 기다린다. 잘못을 빌며 용서를 청한다. 아비새는 죽이자 하지만 다윗은 용서한다. 다윗이 도피할 때 따르지 않았던 므비보셋도 나왔다. 시바가 모함한 사실을 고하며 용서를 청한다. 다윗은 그에게 시바와 재산을 나누라 명한다. 그는 재산을 포기한다. 시므이와 므비보셋은 다르다. 그 차이를 생각한다.
전에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졌다. 사울의 사람으로서 다윗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했다. 이제 그는 자기 목숨을 챙겨야 한다. 다윗의 부하들이 자기를 죽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명 활동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베냐민 사람들을 모아서 강을 건너는 다윗을 모시러 나왔다. 다윗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그러나 후에 솔로몬에 의해서 그는 죽임을 당한다. 므비보셋은 다르다. 그는 시바에게 모함을 당했다. 시바의 배신으로 다윗을 따라가지 못했다. 다윗은 시바와 므비보셋 중 누구의 말을 믿었을까? 물론 시바의 말처럼 그가 다윗을 미워했을 수도 있다. 다윗은 즉시 판단하지 않았다. 사울의 재산을 시바와 반씩 나누라 명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재산을 포기한다. 재물에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그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다. 미련도 없다. 인생의 바닥에서 은총의 경험도 했기 때문이다. 아마 다윗은 나중에 그를 도왔을 것이다. 왕위에 집착하지 않은 자신처럼 그도 재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세상의 가치에서 떠난 겸비한 자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신다. 예수님도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사실 재물은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돈과 권세 등 세상의 가치에서 떠나 가볍고 자유로운가? 여전히 걱정과 불안, 두려움과 미련이 남아있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할 수 없지 않나? 오늘도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한없는 아버지의 사랑과 선하신 뜻에 이를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무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창조와 새 창조의 영광을 계시하시며 영생의 낙원으로 이끄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죄와 사망의 세상과 육신에 매인 인생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자녀로 부르심을 믿습니다. 세상과 육신은 일시적이며 자녀들에게 영생의 나라와 신령한 몸이 주어질 것도 믿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라 명하신 것은 육신의 애착을 버리고 주님이 가신 별세의 길을 통해 하늘의 아버지께 오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으로 아버지께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를 강건하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와 기쁨과 기도를 놓치지 않으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십자가를 택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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