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이상한 정책...(삼하19:9-15)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했다. 그에 협조한 이스라엘 지파들은 고민한다. 다윗을 다시 왕으로 맞으려 한다. 다윗은 유다에 사람을 보내 질책한다. 이스라엘보다 먼저 자신을 맞으라 한다. 그들도 반역에 협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군의 장수 아마사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겠다고 한다. 이상한 정책이다. 다윗은 반역자를 자기 사령관으로 삼겠다며 맹세까지 했다.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왜 이런 황당한 정책을 발표했을까?
물론 그는 민족의 화합을 원한다. 빼앗긴 민심도 되찾아야 한다. 빨리 통일 이스라엘의 왕정을 회복하며 안정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공의로운 판단이 빠진 유화정책이 아닌가? 정의가 실종되지 않았나? 반군을 진압한 부하들보다 죄인을 높인 것이다. 반군의 지도자인 아마사는 오히려 벌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용서하는 것도 모자라 그를 사령관으로 세우겠다고? 우리도 해방 후 친일파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지 않은가? 사실 다윗은 반역으로 인한 고통의 당사자다. 왕위에서 쫓겨나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 모욕과 아픔을 잊은 것일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상식이 아니라 할례받은 자의 선민의식으로 무장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다는 자아의식이다. 그는 자기가 당한 손해와 고통, 혹은 이익을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는 반군도 할례받은 선민 이스라엘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들도 주께서 용서하시면 회복될 수 있다. 그런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다윗의 이런 관점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예표하는 것이 아닐까? 사도 바울도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며 죽였다. 하나님은 그 죄인을 돌이켜 십자가 복음의 일꾼으로 쓰셨다. 반역자는 혹독한 징벌과 함께 제거해야 한다고 세상은 믿는다. 그러나 다윗은 세상의 정치가도 재판장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순종하는 사람이다.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편으로 주께서 주신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세상의 입장에서는 비합리적이며 황당한 정책이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은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실 수 있다. 세상의 인과론, 성취와 보상의 법칙만을 따른다면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윗을 통해 세상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공의와 사랑의 접점은 어디일까? 은혜의 원리로 주어진 십자가가 유일한 답이 아닌가? 판단과 정죄, 구원과 심판은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하며 영원한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주권이 오직 주께 있음을 믿습니다. 모든 죄를 사하시며 기억하지 않겠다 말씀하신 것은 상번제의 완성, 즉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구원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악에 빠졌던 바울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사랑과 은혜의 길에 오른 것을 기억하며 사람에 대한 정죄와 증오의 마음을 버리기 원합니다. 주는 어떤 악인도 구원하시며 천국으로 부르실 수 있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도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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