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11)
히브리서는 우리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명한다. 출애굽은 했으나 광야에서 주의 진노로 죽은 조상들을 예로 든다.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며 시험했다. 마음이 미혹되어 주의 길을 알지 못했다. 완악한 그들은 내 안식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주가 선언하셨다. 그들처럼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를 생각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충성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끌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자기 육체의 느낌을 믿었다. 목이 마르면 하나님이 없다고 외쳤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망언을 했다. 육신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돕는 존재일 뿐이다. 무한한 사랑과 지혜, 권능의 조물주가 아니었다. 육신의 소원을 이루고 만족하면 내 하나님이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을 시험한 것이다. 미혹에 빠진 아담처럼 스스로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기 원했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간과했다. 히브리서는 말한다.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듯이 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모세는 충성했다. 집을 지은 사람이 그 집보다 귀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모세보다 크신 분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버리고 왜 모세의 율법에 집착하는가? 예수의 은혜로 우리도 하늘의 가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부패한 세상에서 악한 습관에 젖은 우리도 예수 사건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과연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가? 어떻게 유대교의 종교 조직과 체제를, 세상의 법과 전통을 고집하며 주 예수를 떠날 수 있는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의 그리스도 사건을, 그 십자가의 은혜를 어떻게 잊고 이전의 완고한 삶으로 돌아가는가? 일시적 만족과 기쁨의 작은 구원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음의 저주에 걸린 인류에게 주실 큰 구원을 놓칠 수는 없다. 오늘 나는 무엇을 진정 원하는가? 육신의 시험에서 벗어나 영생과 진리의 길에,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집에 오르기를 소원하는가? 그 길은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동선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예수의 은혜로,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령의 인도 아래 사는 오늘을 소원한다.
사랑과 긍휼의 주 하나님, 저주받은 땅의 완고한 피조물들을 오래 참으시며 영생과 진리의 세계로 이끄시는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개별의 인격체로서 사랑의 관계로 부르시며 거룩한 자리에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불신과 반항의 마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를 인자의 몸으로 보내 저주의 땅에서 별세와 부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통해 하늘 소망을 품게 하셨으니 우리의 마음도 하늘 아버지께 이르기 원합니다.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그의 나라의 의를 구하며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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