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예수를 찾는 여인들(막16:1-8)
금요일에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다. 안식 후 첫날 아침 여인들이 죽은 예수에게 간다.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져간다. 여인들은 안식일에 오직 예수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언덕을 오르며 말한다. “무덤 입구에 있는 돌을 누가 굴려줄까?” 그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그곳에 천사가 있었다. 본문의 메시지를 생각한다.
성도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여인들은 안식일을 지내며 예수의 죽음을 생각했다. 안식일은 세상의 일을 멈추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날이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 되신 예수만을 생각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그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인들은 무덤의 큰 돌을 굴릴 힘이 없다. 현실의 문제에 봉착했다. 합리적인 방법을 먼저 찾으려 했다면 그 시간에 무덤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 문제를 무시했다. 무작정 길을 간다. 예수께 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천사를 발견했다. 무덤은 부활의 현장이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했다. 이런 것이 성도가 사는 방식이 아닐까? 세상에서 만나는 문제들, 정치와 경제, 자녀, 혹은 건강 등 현실에 마음을 주면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할 수 없다. 끊임없는 걱정과 염려, 수고, 두려움 등에 시달릴 것이다.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느낄 수 없다. 그런 세상의 일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따라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주의 뜻에 맡기며, 십자가의 예수를 따르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본분이 아닐까? 죽음의 저주를 받은 땅에 그리스도 예수가 버려지셨다. 그 혼돈의 구덩이에 우리가 있다. 곤고한 세상,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리며 자기를 얹어야 한다. 그 죽음과 부활과 승천, 우편의 길에 참여해야 한다. 그 길이 영생과 진리의 나라에 오르며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영광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그 여인들처럼 세상에서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 되신 예수께 온 마음을 쏟는가? 여전히 세상과 육신에 마음이 묶인 채 요동하지 않는가? 주님의 부활을 발견한 여인들처럼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임하는 축복을 경험하며 찬양을 올리는가?
전능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은 혼돈과 어둠 속에서 종말을 향해 치닫지만 주는 사랑과 지혜와 권능으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과 십자가 사역으로 증언하신 영생의 구원이 이 시대 우리에게도 허락된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삶에 적용하며 은혜의 길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강건하게 하소서. 끝까지 견디며 이기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늘 쉬지 않고 범사에,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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