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모욕하는 자, 이득을 챙기는 자(막15:24-32)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밑에서 예수의 옷을 군인들이 나누어 가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욕한다.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조롱한다.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옆의 십자가에 달린 자도 조롱한다. “그리스도 이스라엘의 왕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우리가 보고 믿도록 해보라.”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군인들은 옷을 챙긴다. 이득을 얻는다. 유대인들은 나라의 독립과 풍요, 번영을 기대했다. 실망한 그들은 예수를 조롱한다. 너나 구원하라며 모욕한다. 대제사장 등은 예수를 미워했다. 기득권을 무시하며 백성들의 존경과 인기의 경쟁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웃으며 안심한다. 그러나 3일 후 예수는 부활한다. 제자들은 믿음을 회복한다. 하나님과 천국, 부활의 나라를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던 마음이 하늘을 향한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음모설을 퍼뜨리며 그의 부활을 부인한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을 그들 사회의 악이라며 배척했다. 그러나 부활은 진실이었다. 세상과 육신의 욕구를 떠나 주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로 인해 복음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부패한 사람의 죄성은 예수의 십자가를 다시 자기 이득의 도구로 사용한다.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그저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에 기뻐하고 만족하며 십자가의 길에서 내려온다. 믿기 이전과 똑같이 땅의 재물과 권력. 명성 등을 소원하며 탐욕과 정욕의 길을 간다. 마음이 예수의 십자가 별세와 부활, 승천의 길을 떠나 다시 세상의 길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랑한다. 육신의 소원을 위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주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것이다. 육신의 영광을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종교화된 신앙 체제에서 십자가의 도는 점차 잊혀진다. 막연한 말로 구원을 언급하며 인간 중심으로 세속화된 신앙, 빗나간 믿음이 아닐까? 과연 오늘 나는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밝히 보는가? 부패한 세상과 육신의 미혹을 따라 세속의 자랑과 욕구의 경쟁에 묻혀 사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십자가의 주님을 배반하는 삶이 아닌가? 오늘도 성령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깨우치며 온전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한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 거룩은 가장 소중하며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모든 존재 위에 유일한 주이시며 좋으신 분입니다. 죄와 죽음의 저주에 매인 현실을 잊고 땅에서의 만족과 안정을 추구하는 선민들에게 환란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깨우치며 돌이키게 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잊는 순간 죄로 돌아가는 연약한 육신들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복음을 생활화하는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성령께서 이끄소서.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을 견디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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