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나(시59:1-17)
자객들이 밤에 다윗의 집에 침입했다. 다윗은 도망간다. 분노한다. 저주한다. 그들을 저녁에 무리 지어 다니는 굶주린 개들이라 한다. 그들은 배부르지 못하고 밤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아침에 주 하나님을 노래할 것이다. 인자하신 주 하나님이 그의 요새이며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악인들과 피하는 신자를 생각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냈다. 왕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 왕위를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다윗은 승승장구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 같다. 사람들의 존경과 인기를 얻는다. 시기심과 질투가 그를 미치게 한다. 다윗을 증오한다. 죽여버리고 싶다. 자기 안에 하나님이 없는 근원적 열등감과 상실감, 피해 의식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미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의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에는 주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진다. 열등감도 상실감도 없다. 현실을 수용하며 감사한다. 그러나 주변에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악인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 모함, 공격을 당한다. 그의 인생길이 막혔다. 분노가 일어난다. 똑같이 그들을 저주한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다. 그곳을 떠난다. 주의 심판에 맡긴다. 온 마음을 주께 드린다. 구원을, 은혜를 구한다. 믿음으로 피하며 의지하는 자를 주는 구원하신다. 그의 마음은 땅을 떠나 하늘로 향한다. 주의 사랑과 은혜, 그 흐름에 접속한다. 평강을 회복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한다.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그 마음은 평화를 누린다. 보이는 세상의 환경이 전부가 아니며 주를 믿는 그에게는 기쁨의 조건도 아님을 깨닫는다. 마음이 땅을 떠나 하늘에 닿은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은혜와 진리로 충만할 것이다. 순교한 사도들과 스테반이 그런 것처럼 육신의 죽음 앞에서도 평화를 누리며 감사할 것이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믿음이 아닌가? 주께 피하지 않고 악의 현장에서 자기를 고집하며 함께 죽자고 싸우는 것이 과연 믿음일까? 다윗은 항상 하나님이 그의 힘이며 요새이며 피신처라 고백했다. 악이 번성하는 세상에서 육체로 살면서 분노와 저주가 이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윗처럼 주의 인자와 진리를 기억하며 마음이 곧 하늘로 향해야 온전한 믿음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은혜로 이끄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 별세(Exodus)와 부활과 승천의 길을 따라 우리 마음도 하늘 아버지의 평강과 기쁨에 닿을 수 있기를 소원한다.
사랑과 지혜의 주 하나님, 무한한 사랑과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고 보존하며 구원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주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사랑과 기쁨의 자리, 영생의 자녀로 부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의 말씀과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을 드리기 원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 사랑 아래 들어가게 하소서. 마음은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몸은 성령을 따라 그 뜻을 이루며 찬양하게 하소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내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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