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유다 왕도 함께 죽었다(왕하9:27-37)

되어지는대로 2024. 7. 11. 06:22

유다 왕도 함께 죽었다(왕하9:27-37)

 

   반역한 예후는 요람 왕을 문병하러 온 유다 왕 아하시야도 죽였다. 그는 요람의 조카였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그의 엄마다. 그도 아합의 집에 속했기 때문이다. 외가의 반역에 휘말려 함께 죽은 다윗의 후손을 생각한다.

 

   여호사밧 왕의 잘못된 정책으로 이세벨의 악한 영향력이 다윗의 왕가에 미치게 되었다. 다윗의 길을 따르는 유다 왕과 여로보암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 왕이 사돈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윗의 후손이 육신의 번영과 기쁨을 추구하는 삶이 당연하다고 믿는 가나안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똑같이 재물, 권력 등 세상의 것을 갈망하며 소원했다. 가나안 땅의 세속적인 풍조와 문화에 동화되었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아합과 이세벨은 악행으로 이미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믿는다. 다윗의 길을 따르기 원한다. 그런데 왜 율법을 어기며 악한 아합과 친해지려 했을까? 북 왕국 이스라엘을 형제 나라로 생각하는 민족의식 때문일까?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하는 위험 속에서 안보를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민족 사랑보다, 형제애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 아닐까?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있게 된 존재들이 아닌가? 육체로 만나는 세상의 모든 관계와 존재들은 주께서 주신 복이지만 또한 시험의 도구이며 재료들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를 사랑하며 경외하지 않는다면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기며 죽음에 이를 것이다. 성경은 반복해서 그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가? 보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육체의 오감, 곧 육체를 따라 사는 인생은 주께서 계획하신 본래의 사람이 아니다. 세상과 육체는 주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세상의 선악을, 피조된 삶의 좋고 나쁨을 피조물이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목적하며 계획하는 것은 창조주의 주체성을 간과하며 그 주권과 충돌하는 것이다. 혼돈과 공허, 죄와 타락의 저주에 갇힐 것이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고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 그 주권을 알게 된 선민들이 타락한 세상의 죄와 저주에 휘말려 함께 죽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사탄의 끈질긴 미혹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육신에 종속된 마음이 죽고,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따라 하늘 아버지께 대해 거듭나며 그 구원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소원한다.

 

  사랑과 공의의 주 하나님,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영광을 보이며 은혜의 길로 부르심은 후손들도 그 길에 참여하며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미혹과 육신에 매인 마음은 그 영생과 진리의 복을 보지 못하고 죄와 저주의 길을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 연쇄 과정으로 주의 사랑과 구원의 뜻을 확증하셨습니다. 오늘도 믿음과 소망으로 은혜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그 십자가의 길에 마음이 올라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그 영광을 바라보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