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 생활화」
예수를 믿는다면 반드시 그 마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주기도를 암송한다. 수없이 이 구절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고 실제 삶의 현장도 그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아마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과 마음은 따로 놀 수 있다. 입으로는 그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음은 피조물을 좋아하는 체질적 위선, 그리고 하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이 책임지려는 주체적 삶의 습관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서 왜 완전한 기쁨과 만족을 주시려는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사랑을 쏟지 못할까? 여전히 세상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마음의 태도 때문이다.
마음에는 많은 세상의 이름들이 들어와 있다. 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며 살아간다. 기업가, 전문직 또는 직장인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각자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고 만족하며 살아간다. 어떤 대상의 있음을 의식하며 그것의 좋음을 추구한다. 자기에게 가장 의미 있는 존재감과 좋다고 믿는 대상으로 마음을 채운다. 때로는 미움과 싫음으로 마음을 채우기도 한다.
하나님은 본래 사람의 마음에 당신이 들어오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주와 하나가 되어 그 뜻을 땅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기 위해 사람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믿음과 사랑으로 기쁨을 나누는 하늘의 가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의 길에서 인류는 실패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다. 아들 예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 곧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길을 통해 유전적 죄성을 벗고 저주받은 땅에서 탈출(EXODUS)해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이 돌아올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땅에서 몸으로 사는 동안에는 죄와 타락의 미혹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인자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아신다. 그러므로 주 기도를 가르치셨다. 제자들의 마음에서 항상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에서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않으면 영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시험을 이길 수 없다. 예수를 통해 얻는 자녀의 권세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마음에서 가장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며 기뻐하며 아끼는 대상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여야 한다. 그 믿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신 내 주님이며 그 십자가가 내 것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주기도의 이 첫 구절은, 저는 주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이오니 이제 아버지의 이름이 제 안에서도 온전히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그 이름이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분명하고 엄격하게 그 이름을 다른 이름들과 구별한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름이 있다. 우리는 각자 그 이름의 존재감을 의식하며 실체인 그 대상을 추구하거나 혹은 미워하며 없애려 한다. 이름들의 존재감은 각자 천차만별이다. 행복과 불행도 그 이름의 무게감에 달려 있다. 사람에 따라 존재감과 좋음을 느끼지 않는 이름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공항 대기실에서 옆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다. 성도라면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 평생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가장 큰 존재감으로 거룩히 여겨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심을 의식하고 그 좋으심을 느끼며 그 말씀과 뜻을 따라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서 항상 하나님의 이름이 조명을 받고 있는가?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추구하는가? 대부분 시간을 돈과 권력 등 세상과 육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하셨다. 하나님의 라이벌로서 재물을 예로 드시며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과 돈을 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마음에 거룩히 여겨진다면 나머지 세상의 모든 문제와 상황들의 존재감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 마음은 이름들의 전쟁터다. 이름들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이겨야만 한다. 내 안에서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아버지의 이름이 가장 사랑하며 가장 기뻐하는 이름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세상에서 매일 만나는 상황은 끊임없이 도전하며 시험한다. 사로잡으려 한다. 그러므로 밀려오는 세상의 문제와 염려 앞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십자가 복음의 생활화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마음의 별세와 부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내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이름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지금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으로 기쁨과 만족을 추구하는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의식하며 추구하는 최우선의 대상이신가? 과연 나는 삼위 하나님의 새로운 영적 환경 안에서 사는가?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가르치셨다. 우리는 평생 주기도를 드리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식한다. 그 이름을 실제로 거룩히 여기는 삶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의 어린 양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과연 주님께서 가르치신 본래 의미를 따라 온 마음을 드리며 하늘 아버지와의 교제와 소통을 원하는가?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서 가장 거룩한 이름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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