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는 왜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며 앗수르에 도움을 청했을까(왕하16장)

되어지는대로 2024. 7. 26. 06:16

그는 왜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며 앗수르에 도움을 청했을까(왕하16)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유다 왕이다. 그는 처음부터 악한 왕이었다. 산당을 용납하는 정도가 아니다. 바알 외에 여러 이방 우상의 제사까지 도입했다. 아들을 바치는 인신 제사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악행이다. 이사야서에 의하면 선지자 이사야가 전쟁을 앞둔 그에게 말씀을 전했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말라, 주 하나님을 믿으라 했다. 그는 거절했다. 그리고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하스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그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는 세상의 가치에 충실하다. 현실적 판단을 따르며 실리를 추구한다. 세속적인 사람이다. 세상에는 번영을 약속하는 우상들이 많다. 강대국의 신은 이미 세상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그런 우상을 통해 복을 얻고 싶다. 자기 소원을 위해 사람들은 산당에 모여서 제사했다. 신에게 잘 보이려고 뇌물을 드린다.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친다. 하나님은 다르다. 언약을 맺고 율법을 주며 지키라 하셨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네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물론 네 자녀에게도 언제 어디에서나 늘 그 계명을 읽고 묵상하며 가르치라 명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아하스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기 주체성과 주권, 특히 왕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주의 종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와 노력으로 의해 동원되는 분도 아니시다. 자발적, 창조적인 뜻으로 당신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동원할 수 있는 신을 원한다. 선지자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거부했다. 눈에 보이는 강한 앗수르 왕에게 돈을 바치며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앗수르를 방문한다. 그들의 신전과 제단을 보고 감탄한다. 그 제단의 양식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새 제단을 만들어 설치한다. 본래 있던 여호와의 번제단을 북쪽으로 치워놓는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앗수르의 신에게 제사한 것이다. 자신의 승리와 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에서 입증된 강한 신을 택하며 그 능력을 동원하는 종교의식을 실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의 길이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앗수르 왕의 종이 된 것이다. 앗수르 제국의 번영도 일시적, 상대적 승리였을 뿐이다. 절대적 승리와 복, 참된 평강과 기쁨은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며 연합하는 자에게 나타난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늘의 주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주께 경배하는가? 세상의 복을 갈망하는 아하스처럼 신의 능력만을 동원하기 위해 종교의식을 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하시는 주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를 내어드리며 주를 사랑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 있는가? 십자가의 예수님, 당시 사도와 성도들은 그 믿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세상의 박해와 유혹, 협박과 조롱을 이기지 않았는가?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아버지께 예배하며 온전한 구원의 믿음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창조주이며 만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전부를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무한한 사랑과 지혜, 권능으로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힌 우리를 주님 안에서 영생의 구원으로 이끄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과 육신의 미혹에 걸려 믿음의 길에서 실족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그 사랑과 은혜를 거부하고 세상의 길을 따르는 악에서 구원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하늘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