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헌신, 마리아의 헌신, 유다의 분노(요12:1-11)
유월절, 곧 예수님이 체포되기 6일 전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온 집안에 향내가 가득했다. 가룟 유다는 분노한다. 비싼 향유를 낭비했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많은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었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만두라 하신다. 그녀는 당신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며, 앞으로 세상에 복음이 전파될 때 이 일도 함께 기억될 것이라 말씀하신다(막14:9).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한다.
향유의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 아마 우리 돈으로 3-4천만원 정도였을 것이다. 마리아에게 소중한 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가치와 상식을 초월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과 헌신을 알았고, 감사와 뜨거운 사랑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6일 후 이어질 십자가의 죽음을 그녀는 알았을까? 이미 수난을 예고하셨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십자가 사건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죽음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녀가 장례를 준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장례를 위한 향유는 그가 죽은 후 니고데모가 가져왔다. 그렇다면 그녀가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 앞으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세상에 전할 때, 그 말씀을 받는 신자들이 가지게 될 온전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가 선민들의 구원을 위해 인자로 땅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하고 하늘로 돌아가셨다. 그를 영접하고 따르는 자는 죄와 죽음의 저주를 벗고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얻는다. 창조주 하나님을 주 예수와 함께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할 것이다. 그 마음이 타락한 세상, 부패한 육체를 벗고 주님 안에서 에덴을 회복하며 땅에서부터 천국과 방불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는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영광의 주 하나님 앞에서 독자 이삭까지 아끼지 않은 것처럼, 사도 바울이 세상에서 쌓은 모든 성취와 경력, 신분 등에 미련을 품지 않고 오히려 배설물로 여긴 것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그 주권과 선하신 뜻을 깨닫는 자는 마리아가 그런 것처럼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것조차도 아끼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다. 과연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앞에서 세상의 어떤 것이 소중하며 아까운가? 여전히 가룟 유다, 혹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처럼 세상을 향해 세운 자기 판단과 신념, 소원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 은혜, 그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과 승천의 부르심과 이끄심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세상에 미련을 품고 아까워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가룟 유다처럼 분노하게 되지 않을까? 오늘도 주님의 별세와 부활과 승천, 그 은혜의 십자가 길에 온 마음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 한없는 사랑과 긍휼로 선악과 나무의 죄와 죽음의 저주를 끊는 십자가 나무에 주님을 달리게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이 믿음의 여정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우리를 향한 그 헌신 앞에서 그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마음을 드립니다. 그 은혜의 길을 따라 우리 마음도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께 이르게 하소서. 참 평강과 기쁨 안에서 하늘에서 세우신 뜻을 땅에서도 이루며 찬양하게 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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