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이런 불평과 원망의 체질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민21:1-9)

되어지는대로 2025. 5. 9. 05:29

이런 불평과 원망의 체질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21:1-9)

 

   이스라엘이 험한 광야 길을 걸어간다. 좋은 길을 두고 돌아가야 하는 그들의 마음에 짜증이 났다. 불평과 원망의 불길이 일어난다. 지도자 모세, 그리고 하나님께 원망을 쏟는다.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 광야에서 죽게 만듭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형편없는 음식이 지겹습니다.” 주께서 진노하셨다. 독사가 나타났다. 고통과 죽음 속에서 주의 진노를 깨달은 그들은 모세에게 사정한다. 모세가 기도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바라보라 명했다. 누구든지 그 죽은 뱀을 바라보면 살 것이라 했다. 그들은 장대의 놋뱀을 바라보며 죽음에서 벗어났다. 이미 40년을 그들은 황량한 광야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만나도 익숙한 음식이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그런 육신의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혔을까?

 

  직전에 므리바 사건이 있었다.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힌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셨다.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셨다. 적대적인 에돔 때문에 쉬운 길로 갈 수 없는 현실도 수용했다. 그런데 주변의 아랏 왕이 싸움을 걸었다. 모세가 주께 물었다. 주께서 그들을 넘기겠다 하셨다. 그들과 싸워 이겼다. 승리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다시 힘든 광야 길을 걷는다. 에돔을 치면 쉬운 길로 더 빨리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백성들의 마음에 짜증이 났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불평과 원망이 솟구친다. 반복되는 그들의 불경함에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으셨다. 독사 떼를 보내셨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십자가 복음의 관점으로 풀어 주셨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뱀의 독. 곧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혀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자녀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 광야의 선민들이 죽은 놋뱀을 바라본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완악한 체질을 죽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죽음을 자기 죽음으로 동일시하며 죄와 저주를, 원죄적 육성을 끊어내라는 것이다. 육체로 얻은 세상의 지식과 경험을 믿는 자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리석고 무익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선민은 바라보며 구원을 얻을 것이다. 태초의 뱀에게 미혹된 인류는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죽음의 저주에 중독된 채 살아간다. 뱀처럼 마음의 배를 땅에 붙이고 돌아다니며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것으로 육신의 만족과 기쁨을 구한다. 죄와 저주에 젖은 인간 사회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제 선민은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미래의 꿈과 희망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앞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고 하늘의 주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간다. 언제나 살아계신 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그 사랑과 공의, 지혜의 주권에 순종한다. 예수님은 인자로 땅에 오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하늘길을 열어주셨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는 자는 그의 길을 따르며 영생과 진리의 구원을 얻는다. 주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복을, 평강을 누릴 것이다. 오늘도 타락한 세상에 안주하며 하늘의 참 평강과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죄와 죽음의 저주에 젖은 체질이 주님의 보혈, 그 십자가 은혜로 온전히 끊어지기를 소원한다.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오래 참으시며 사랑과 은혜로 구원의 방법과 길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죄와 죽음에서 생명과 진리의 구원은 지금 살아계시며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으로 얻는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 은혜의 길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며 감사와 기쁨으로 따르기 원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성령으로 이끄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