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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4일 오전 09:06

되어지는대로 2020. 1. 14. 09:06

표적을 보지 않고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요4:43-54)

예수님은 이틀 후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다. 표적과 기사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다. 왕의 신하가 와서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 청한다. 그때 말씀하신다.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신하가 거듭 부탁하자 말씀하신다. “가 보아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는 가다가 아들이 나은 것을 확인한다. 그와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문맥상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좋게 여기지 않으신 것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한다.

어제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과 대조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했다. 표적과 기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야 그를 믿는다. 그들의 믿음은 기적을 통해 시작된다.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일까? 물론 그렇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가성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중에 우물가의 여인에게, 직접 말씀을 듣고 보니 그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믿음이 더 순전하지 않은가? 갈릴리 유대인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했다. 혹시 내가 버림받지 않았나 근심하며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인 줄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풍요와 번영, 능력과 형통을 구한다. 그들은 그런 조건을 충족시켜주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죄인들을 주께 인도해서 영생을 주시려 하신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온전할까? 하나님의 사랑,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인가? 이기적이고 교만한 마음으로 내 형통과 기적을 구하다가 낙심하는 믿음은 아닌가?

은혜의 주 하나님, 계시의 말씀, 성육신의 몸으로 찾아와 가르치시고 은혜를 베푸심을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감사와 기쁨으로 온전한 자녀의 믿음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를 시험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듣고 따르며 삶의 현장에서 원하시는 주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내 뜻을 버리고 주의 완전하신 뜻을 구하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항상 기도하고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신자의 승리를 얻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