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의 충고...(욥4:1-11)
친구 엘리바스가 참지 못하고 욥에게 책망을 시작한다. “전에는 네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며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리 절망하는가? 잘 생각해보면, 누가 죄없이 망하겠나? 정직한 사람이 끊어지는 일이 어디 있나? 내가 본 바로는 죄악을 짓는 자, 고난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더군.” 엘리바스의 오해를 생각한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으로 절망하며 탄식한다. 그러나 친구는 그의 재앙에 분명히 합당한 이유, 즉 어떤 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욥기 마지막 장면에, 하나님은 절망하는 욥이 옳고 친구들이 틀렸다고 말씀하셨다. 고난과 망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죄로 인해 사람들은 망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욥의 경우, 사실 욥은 망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가 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늘의 관점에서, 그는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믿음의 완전한 단계로 넘어가는 복된 과정 중에 있다. 세상의 관점에서 재물과 자녀, 건강 등을 잃는 것은 망한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삶에서 그런 것은 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고 더 깊이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바울 등 세상에서 버림받고 헐벗고 굶주리며 순교한 사도들도 망한 인생들이 아니다. 오히려 하늘의 복으로 충만하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실 오늘 우리도 욥의 친구들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돈과 건강 등을 잃은 삶을 망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견해가 틀렸다고 말씀하신다. 욥의 고난처럼 세상에서 버림을 받는 것이 오히려 세상에 대한 헛된 비전과 소원을 버리고 영광의 하나님을 만날 복된 기회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오늘 나는 세상과 복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정말 사랑하며 기뻐해야 할 것은 부패와 혼돈의 세상에서 내 유익, 내 성취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며 그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를 지으시고 보존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주를 떠나 불순종과 저주로 죄와 사망에 묶인 피조물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세계로 부르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부패와 혼돈의 땅을 떠나기 위해 죄의 체질인 나의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과정이 필요함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길과 진리, 생명이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여정을 따르며 인도를 받기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을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 마음을 드리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 가운데 육신의 남은 삶을 살게 하소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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