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낙심...(욥3:1-10)

되어지는대로 2021. 10. 5. 08:56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낙심...(3:1-10)

 

욥이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모태에서 죽었더라만 좋았겠다며 탄식한다. 그는 죽음을 동경한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죽음을 원하는 그의 믿음이 옳은 것일까?

 

분명히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믿음을 자랑하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삶의 의욕도 소망도 없다. 죽음을 간절히 원한다. 고통과 절망밖에는 없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있다면, 하나님을 만났다면 이렇게 절망할 수 없을 것이다. 극심한 고통 속의 그로서는 당연하다. 그의 믿음은 들어서 아는 믿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믿는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경외하며 순종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며 두려운 통치자이시다. 그는 감히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하거나 고침과 반전을 원할 수도 없다. 그저 자신의 신세를 탄식하며 죽음을 동경할 뿐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결국 욥기 마지막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난다. 궁극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그 완전하심과 선하심, 그 무한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접하는 것이 아닐까? 아브라함도 스테반도 그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아닌가? 변화산의 베드로도 그 영광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지 않았는가? 나는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는가? 그저 이론적인, 교리적인 하나님을 믿고 자기 소견과 느낌으로 기뻐하며 슬퍼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과 우편의 길을 따라 온 마음을 다 드려야 그 영광을 보지 않을까? 그러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소망, 사랑의 여정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고통의 짐을 대신 지신 예수, 욥의 고난을 넘어 우리를 하늘 아버지께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본다.

 

은혜의 아버지 하나님, 여전히 보이고 들리는 세상의 현실은 절망과 낙심뿐이지만 택하신 자녀들에게는 온전하고 정직한 믿음을 허락하시고 영의 눈과 귀를 열어 하늘의 여정으로 들어가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결국은 영생과 진리의 나라에 서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온전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죄와 사망의 길을 벗어나 영광의 좁은 문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언제 어디에서나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모든 삶을 드리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