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인생길에서 만나는 분...(욥7:1-10)
욥의 탄식이 이어진다. “사람이 땅에서 사는 것이 고된 종살이가 아닌가? 그 삶이 품꾼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몇 달 동안 허무한 일을 당하고 비참한 밤이 나를 위해 정해졌다네... 내 인생이 바람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내 눈이 다시는 좋은 것을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의 부정적인 인생관과 믿음을 생각한다.
그는 인생의 허망함을 고백한다. 한때 많은 재산과 자녀들, 좋은 일들로 기뻐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관심은 죽음뿐이다. 삶의 모든 기대와 소망을 잃었다. 피조물로서, 자연인으로서 그는 무력하다. 너무나 슬프다. 경외하는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완전하시니 실수하셨을 리가 없다. 이제 세상에 대해서 그에게 남은 것은 우울과 낙심, 절망뿐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나쁜 것일까? 하나님은 그가 이처럼 극도의 우울증에 처할 것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망을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닐까? 이 과정을 통해 그 마음이 세상의 영광을 떠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한 죽음을 고백하는 것도 이런 절망의 과정을 통과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에 대한 애착, 미련과 아쉬움이 있다면 그 마음은 세상에 대해 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주님을 따라 출세상의 길, 즉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의 천국 여정을 갈 수 없지 않는가? 인생이 고통의 바다이며 결국 허무하게 사라질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 나라를 진실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동경할 수 있을까? 어떻게 혼돈과 공허, 흑암의 땅에서 오늘을 견디며 담담히 살아낼 수 있을까? 욥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좋으심, 그 거룩하심을 체험하며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인생의 비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새로운 믿음을 위해 거듭남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새로운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거듭난 자녀의 천국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새로운 현실감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창조와 구원, 새창조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의 형상으로 지음받고 은혜를 입은 피조물이 자기 판단과 능력을 주장하며 부패와 혼돈, 저주와 심판의 세상 나라를 세우며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긍휼하신 뜻과 손길로 구원의 하늘문을 열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길로 택하신 자녀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빛과 생명, 길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합니다. 담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출세상 및 천국의 여정을 따르게 하소서. 세상과 육체의 미혹을 이기며 감사와 기쁨으로 영광의 나라와 의를 바라보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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