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과 요구사항(창121-9)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신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 명하신다. 그는 순종한다. 당시 집을 떠나는 것은 안전한 삶의 보장, 그 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속한 공동체의 보호가 없다면, 다른 나라의 권력자들에게 아내를 빼앗길 수 있다. 아내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순종한다. 억지로 순종한 것일까? 과연 그는 믿음의 조상인가? 순종(율법적 행위)의 조상인가?
히브리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규정한다. 믿음은 마음과 뜻,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억지로 순종하지 않았다. 아내보다, 자기 안위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해서 그 말씀을 따른 것이다. 믿음은 세상 어떤 대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 중심, 제일의 자리에 모시고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이다. 약속하신 복은 사실 그의 때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창대해지고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며 그로부터 복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후대에 있을 일들이다. 실제로 그는 고통의 광야 길을 걷는다. 약속의 땅에서 기근을 겪고 애굽까지 가서 아내를 빼앗긴다. 유목민으로 장막에서 살아야 했다. 집을 짓고 정착하는 안정된 삶이 아니다. 나그네로 살다가 아내가 죽고 처음 가나안의 땅을 묘지 용도로 얻었다. 그러나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스테반은 그 믿음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행7:2)”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욥처럼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완전하심을, 그 무한하심과 좋으심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야망도 미련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만족하며 주어지는 현실을 살아간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오늘 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통해 지금도 증거되고 있는 그 영광은 오직 그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며 성령을 받을 때에 볼 수 있지 않을까?
영광의 주 하나님, 아브람을 택하시고 영광을 드러내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서 우리를 부르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믿음은 마음과 뜻, 목숨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패한 우리의 마음은 세상과 육체에 묶여서 주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죽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그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립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서 살게 하소서. 마음이 하늘 아버지의 사랑에 닿게 하시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육신으로는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모든 주권과 영광이 오직 주께 있음을 고백하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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