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인정과 축복, 그러나...(삼상26:13-25)
다윗이 사울의 진영을 향해 외친다. 아브넬의 책임을 묻는다. “너는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에 너만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어떻게 네 주인 왕을 지키지 못하느냐? 누군가 네 주인을 죽이러 들어갔었다.” 이어서 사울에게 호소한다. “왕은 왜 종을 잡으러 다니십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나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말한다.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기를 바란다. 네가 큰일을 할 것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 길을 가고 사울도 자기 궁으로 돌아갔다. 결말이 허무하다. 각자 자신의 길을 간다. 설득은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화합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울이 인정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다. 네가 승리할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며 승승장구했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다.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 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울을 다윗은 믿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그는 잘못을 고백하며 다윗을 선대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신하들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다윗은 이번에도 설득에 성공했다. 그러나 일시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자 자기 길을 간다. 다윗은 여전히 도망자로 살아야 한다. 이처럼 사울은,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힘들고 고달픈 삶은 여전하다. 이것이 부패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통이 아닐까? 사실 우리도 사울처럼 회개를 반복하지만, 곧 옛사람의 길, 육신의 정욕과 탐심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하나님도 우리의 고백과 회개를 믿지 않고 계신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은 우리 몸이 죽을 때까지 늘 반복되어야 한다. 성도는 하루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늘의 아버지를 의식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하늘의 아버지께 대해서는 산 자로 행해야 한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진실로 거룩히 여겨지기를, 그래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온전한 말과 행함으로 살 수 있기를 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선악과를 취한 인류는 사탄의 권세 아래 죄와 죽음의 땅에서 세상이 전부이며 유일한 있음과 좋음으로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마음에 거룩히 여겨질 때 아버지의 주권과 나라가 우리 가운데 드러나며 그 뜻이 우리 삶에서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천국의 길을 여셨으니 그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아버지께 대해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과 육신을 의지하는 믿음을 떠나 하늘 구원의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하늘의 평강과 기쁨으로 채우시고 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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