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시53:1-6) .

되어지는대로 2024. 3. 15. 05:51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53:1-6)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악을 행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도 지각이 있고 선을 행하지 않나? 과연 창조론자는 지각이 있으며 선을 행할까? 사람이 아닌 하늘의 관점으로 이 말씀을 생각한다.

 

   하늘에 계신 주께서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창조론을 택하며 주의 존재를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신앙은 창조의 근거와 사실을 단순히 믿기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유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며 간절히 찾는 것, 곧 주 하나님이 그의 존재와 삶의 유일한 근거이며 만족과 기쁨의 대상임을 진심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창조론을 믿는 것이 아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민들은 주 하나님을 알고 경배한다.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그러나 마음으로 돈, 명성 등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고 원하며 추구하면 그는 주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은 실제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와 다름이 없다. 마음 중심에 주의 이름이 아니라 재물, 권세 등 세상에 있게 된 것들의 이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께 등을 진 인생이다. 주의 얼굴을 향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그는 스스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하며 자기 의를 위해 행동한다. 주께서 보시기에 선악과를 계속 따서 먹으며 자기 뜻대로 사는 인생이다. 물론 세상의 관점에서 그도 지각이 있으며 선을 행할 수 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그러나 천국의 관점에서 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은 믿음이 없으며 부패한 인생일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악한 삶이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바울도 세상에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다고 탄식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을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의 지성소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최고의 조명과 사랑을 받고 있는가? 명목상의 믿음이 아니라 실천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기뻐하는가? 온전한 믿음으로 살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죄와 저주에 매인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합니다. 선민들이 입으로는 주를 믿는다면서 마음으로는 주가 없다는 사람들과 똑같이 부패한 삶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시대에도 그런 징계와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 양 그리스도를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다윗의 고백을 마음에 새깁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이끄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이며, 또한 함께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산 자로서 공생애를 살게 하소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