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나를 바알이라 부르지 말라(호2:14-23)

되어지는대로 2024. 10. 3. 06:09

나를 바알이라 부르지 말라(2:14-2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주께서 음란한 선민들을 광야로 데려가실 것이다. 세상과 분리된 그곳에서 그들을 위로하며 참된 포도원을 주실 것이다.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의 때처럼 기뻐할 것이다. 다시는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바알의 이름들을 그들의 입에서 없애실 것이다. 없어질 이름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에게 만족을 줄 것으로 보이는 세상의 대상들을 쫓아갔다.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다. 거룩한 말씀을 묵상하며 지키지 않았다. 경건한 삶을 억압으로 여겼다. 아담 이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며 죄와 죽음의 저주에 젖은 세상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육신의 판단과 욕구는 강렬했다. 주를 모를 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타락한 세상과 육신에 갇혀 있다. 아마도 당시 선민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바알로 부른 것 같다. 이방인들의 바알과 그들의 하나님이 전혀 다른 것을 몰랐다. 육체의 감각으로 느끼는 세상을 사랑하며 영적 음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막으며 광야로 유인해 데려가신다. 세상의 풍요와 번영이 차단된 거친 들의 좌절과 절망 속에서 비로소 창조주를 의식하며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참된 포도원, 그 기쁨과 만족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 때처럼 세상의 노예에서 자유를 얻고 하늘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다시는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본래 바알은 왕, 주인 등 보이는 주권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알의 이름들은 선민들을 사로잡고 속박하는 세상의 것들을 의미한다. 재물이나 권세, 명성 등 우리를 매혹하며 마음을 세상에 가두는 것들이다. 하늘의 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탐심과 정욕의 대상들이다. 사람이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돈이 가장 대표적인 바알의 이름이 아닐까? 아간은 돈을 사랑하여 주의 말씀을 거역했다. 그가 매장된 골짜기가 아골 골짜기다. 그렇듯 돈, 권력 등을 사랑하는 부패한 육성이 죽을 때 비로소 소망의 하늘 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세상의 바알들에 대해 주님과 함께 죽을 수 있다. 자기 앞과 땅만 바라보는 시선을 위로 돌려 하늘 보좌 우편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혹시 우리도 전능하신 창조주이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땅에서 자기 욕구와 뜻을 이루기 위해 동원하는 바알의 이름처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신자들의 입에서 돈이 최고라든가 그저 건강 장수가 최고라는 바알의 말들이 사라지기를, 오직 십자가를 지신 주님 안에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 감사가 넘치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사랑과 은혜의 주 하나님, 영생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은혜로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바알의 이름들에 집착하는 음행에서 벗어나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헛된 이름들을 떠나 오직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마음의 지성소에 모시고 거룩히 여기며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영생의 구원을 이루는 주님의 십자가를 항상 쉬지 않고 범사에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