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음란한 마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호5:1-15)

되어지는대로 2024. 10. 7. 06:09

음란한 마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5:1-15)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의 올무가 되고 다볼의 그물이 됨이라.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며 내가 그들을 다 벌하니라...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음란한 마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른다. 그것이 음란이고 패역이며 살육일까?

 

   창조주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며 사랑과 기쁨의 대상으로 택하셨다. 언약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다. 패역한 것이다. 미스바와 다볼은 사냥터로 유명한 숲이라 한다. 그들이 사냥꾼이 되어 서로 살육했다는 것이다. 자기 판단, 자기 소견대로 서로를 기쁨과 만족의 먹잇감으로 삼았다. 그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밀착하며 탐하는 삶이 영적인 음란이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판단과 뜻으로 다른 대상을 사랑하며 마음을 쏟는 음란함이 패역이며 살육이라 한다. 그 대상, 곧 세상을 망치며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부부처럼 서로 밀착하며 한마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좋음에 빠져 동행하는 삶이다. 그러나 정조를 잃은 고멜처럼 다른 대상에 좋아하는 마음은 주께 접속하며 함께할 수 없다. 그 좋으심도 느낄 수 없다. 죄에 사로잡혀 자신과 상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사람을 살육의 대상으로 삼으며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선민에게는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피조된 세상에 끌리는 마음을 버리고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택하므로 그 사랑과 기쁨에 접속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 충만해진 마음은 이웃을 자기만족을 위한 사냥감으로 보지 않는다.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따라 그도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볼 것이다. 죄와 저주에 젖은 마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도 매일 육체로 만나는 대상에 마음이 접촉하며 밀착하거나 거부한다.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담아야 할 마음이 늘 그런 것들로 더러워진다. 쾌락에 취하거나 살육의 죄로 재앙을 초래한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는 세상의 대상들을 접할 때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멈출 것이다. 세상과 육신에 빠지지 않으며.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의식한다. 그 마음은 성령을 받으며 하늘에 닿을 것이다. 이제 세상과 육신을 통해 만족을 구하지 않는다. 세상의 매임에서도 자유를 얻는다. 세상을 사냥터로, 이웃을 사냥감으로 여기며 살육하지 않는다. 주께서 예비하신 영적인 복을 누리며 하늘에서 세워진 뜻을 세상에서 이룰 것이다. 오늘 우리 마음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에 접촉하며 기쁨을 구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음란한 마음은 아닌가?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참된 평강과 기쁨을 누려야 하지 않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생명의 말씀으로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시며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영생의 나라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도 세상과 육신의 매임에서 자유를 얻고 아들의 영을 받으며 영광의 자리에 세워질 것을 믿습니다. 패역한 죄, 곧 심판의 길을 떠나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하며 하늘 구원의 길에 오르기 원합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마음에 밝히 보며 영생과 진리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성령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으로 오늘을 채우며 그 뜻을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