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내가 속히 갈 것이다.(계22:12-21)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이다. 주님은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하신다. 참으로 내가 속히 갈 것이라 하신다. 요한이 말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때가 가까우며, 속히 오신다는 말씀이 당시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신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로마 정권 아래 박해 받는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생명과 진리의 길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극심한 핍박을 당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불의의 세상을 겪는다. 오직 주님의 재림만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서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고통 속에 죽는다. 그러나 복음은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전파되고 성도들은 늘어났다. 결국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다. 그러나 교회가 부와 권력을 얻었을 때,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 부패한다. 오늘 세상도 인본주의와 우상숭배, 무신론의 세계관이 넘치고 있다. 말씀을 지키는 신자들은 핍박을 당한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때가 가깝다 하신 주님은 알지 못하는 미래의 어느 날, 내 앞에 오시지 않는다. 지금 가까이 우리 위에 계신다. 승천하신 주님은 성령으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영원의 세계는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 시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가 가깝다는 말은 오늘이 그날이라는 뜻이 아닐까? 성도는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잔다는 표현을 쓴다. 그것은 자다가 눈을 뜨는 순간 주님을 만난다는 의미가 아닌가? 자는 자에게 천년의 시간도 한 순간일 뿐이다. 오늘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그 기쁨으로 세상과 삶의 일시적인 것들을 이기고 있는가? 땅의 현실, 눈앞의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주님과 위의 것을,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는가?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해, 주 예수여 어서 오서소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영원한 나라의 하나님, 부패한 땅과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며 사랑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참된 생명과 진리, 진정한 만족과 기쁨은 오직 주께로 나오며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것을 믿습니다. 이미 영원한 나라와 주의 통치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였고 지금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아직 연약한 육신으로 미혹과 고난을 겪지만, 영의 몸을 입고 찬양을 올리는 영광의 날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영의 눈과 귀를 열어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생명과 진리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오늘도 믿음의 기적과 승리를 누리게 하소서.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