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의 나무(단4:19-27)
느부삿네살의 두 번째 꿈을 다니엘이 해석한다. “나무 꼭대기가 하늘에 닿고... 그 잎은 아름답고 열매가 많아 세상 사람들의 먹을 것이 되며 그 아래에 들짐승들이 살고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었다... 왕이여, 그 나무는 바로 왕이십니다... 왕이 강해지고 위대함이 하늘에 닿아 왕의 다스림이 땅끝에 이를 것입니다.” 왕을 상징하는 나무는 아름답고 사람들과 짐승들에게 유익을 준다. 왕의 통치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감시자는 그 나무를 잘라버리라 명령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징계를 내리신다. 그 이유를 생각한다.
정복 전쟁이 끝나고 제국의 통치도 안정되었다. 왕은 통합과 평화를 향한 자신의 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을 통해 왕에게 간섭하신다. 다니엘이 꿈을 해석한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왕에게 재앙이 닥칠 것을 증언한다. 그가 권면한다. “왕이여 부디 내 말을 받아주십시오. 죄를 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죄악을 벗어버리십시오. 그러면 혹시 왕이 오래 잘 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왕은 많은 정복 전쟁과 강한 통치로 부강한 나라를 세웠다. 제국을 통해 평화와 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이룬 땅의 평화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죄를 가릴 수 없다. 다니엘은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권한다. 죄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통치가 죄라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이룬 평화와 안정이 무력과 강압에 의한 것이며 그런 것도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는 전쟁과 억압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세상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인내와 사랑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가 참된 평화다. 그러므로 성취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하지 않는 것이라면 사실은 사탄이 원하는 죄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과연 나는 말씀을 의지하고 나를 부인하며 주님의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오늘을 사는가? 항상 기도로 주와 연결되어 내 비전이 아닌 오직 그 뜻과 은혜로 사는 오늘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를 찬양하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시는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뜻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무지하고 교만한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깨우치심을 감사합니다. 하늘까지 높아지려는 느부갓네살의 나무가 아니라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항상 푸르고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주의 나라와 의를 드러내게 하소서.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합당하도록 인도하소서. 주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담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과 육신의 악한 요구들을 이기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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