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부패와 위선...(삿19:1-15)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이 첩을 얻었다. 그녀가 부정을 저지르고 베들레헴의 친정으로 갔다.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데려오려고 처가로 간다. 첩과 장인이 그를 환영한다. 며칠을 같이 먹고 마시며 즐겼다. 늦게 출발해 가다가 유숙할 곳을 찾는다. 하인들은 여부스에서 머물기를 청하나, 자신은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의 마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선민의 위선을 생각한다.
레위인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도록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의 기업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흩어져 말씀과 제사의 일을 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 하인들과 많은 재산을 소유한다. 첩과 가족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긴다. 레위인도 첩과 장인도, 그들의 부정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죄에 대해서 둔감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방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하인들에게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 그의 삶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 똑같이, 어쩌면 더 부패하고 이기적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의 삶이 아니다. 당시 선민들의 타락한 시대상, 선민 공동체의 악하고 부패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들의 현실은 어떨까? 경건한 바리새인들조차도 율법주의와 배금주의의 덫에 걸렸고, 카톨릭도, 개신교도 역시 세상의 돈과 권력, 명성의 유혹에 젖어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오만하고 배타적인 자부심과 욕망으로 가득하여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는 예외인가? 나 역시 비천한 본성과 습관에 젖은 삶이 아닌가? 구원을 위해서는,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부패한 나의 죽음을 고백해야 한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 마음을 드리며 하늘 아버지께 그 마음이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창조주의 거룩한 말씀을 떠나 육체의 만족을 추구하는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역사를 베푸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말만 믿는다 하며 실제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위선의 시대, 택하신 자녀들을 은혜로 부르시고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주님을 잊고 땅의 욕망과 쾌락에 빠진 삶을 회개합니다. 오늘도 부패한 땅에서 눈을 들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하늘 아버지께 마음이 닿기를 원합니다. 이끄시는 믿음의 여정을 담대히 걷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참 평강과 기쁨으로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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