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 이스라엘의 이름을 등록하다(민1:18-46)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출애굽 이년 둘째 달 첫날에 하나님께서 전쟁에 나갈만한 자들을 계수하라 명하셨다(민1:1). 그날 온 회중이 모여 각 지파와 가문별로 이름을 등록했다(1:18). 모두 603550명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계수가 이루어졌을까? 성막을 완성할 때 생명의 속전으로 남자들은 반 세겔씩 걷었었다(출38:26). 그 숫자와 동일하다. 성막에 등록한 계수를 이용한 것 같다. 다윗도 인구조사를 했다. 그러나 그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초래했다. 인구조사의 의미와 차이를 생각한다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의 성취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백성들을 계수했다. 자기 지위와 성과에 취해 인구조사를 강행했다. 그의 삶에 함께하며 왕의 자리에 세우신 주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며 범죄였다. 이스라엘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셨다. 그들은 모세의 부하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하나님께, 곧 성막에 각자 자기 이름을 신고했다. 세상의 군대처럼 60만 명이 한 왕의 명령에 충성하는 군대가 아니다. 부름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지파와 가문별로 이름을 등록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군사인 것이다. 광야에서 믿음을 배우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나안의 음란한 민족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들은 약하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 창조주께 이름이 알려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정체성과 신분, 믿음을 유지하며 거룩한 나라, 구별된 민족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알며 교제하고 있는 모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모세도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철저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다. 60만 명이 단체로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는다. 높아지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이름을 신고하며 일대일의 관계, 곧 하나님과 60만 개의 인격적 믿음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패했다. 마음이 보이는 세상과 육신의 길에 갇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 주어졌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자의 몸으로 땅에 와서 그리스도 연쇄 과정, 곧 십자가의 별세와 부활, 승천과 우편에 이르는 구원의 하늘길을 열어주셨다. 그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자는 하늘에서 오시는 성령을 받을 것이다. 주님과 함께 마음이 아버지께 이르며 하늘에 이름이 등록된 자의 감사와 기쁨으로 천국 자녀, 곧 영적 군사의 소명을 감당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등록되어 있는가? 세상과 육신의 길이 아니라 주님의 별세와 부활의 길에 마음을 드리며 연합하는가? 오늘도 그 감사와 기쁨으로 소명을 이루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하늘의 백성, 영생의 자녀로 부르며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애굽을 탈출해 광야에서 거룩한 말씀과 권능의 주를 만나며 배우게 하신 이스라엘처럼 출세상과 광야의 인생 가운데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기도처럼 오늘 우리 마음에 하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기 원합니다. 우리의 이름도 하늘에 등록되며 영생과 진리의 길에 오르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 안에서 하늘의 사랑과 기쁨에 참여하며 그 영광을 찬양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보호와 인도 아래 있음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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