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인을 기억하라(마26:1-16)
잡히시기 이틀 전,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여인이 비싼 향유를 가져와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제자들은 분개했다. “왜 비싼 것을 낭비하는가? 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왜 이 여인을 괴롭히느냐? 이 여인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항상 너희 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인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할 때마다 이 여인의 일도 함께 전하는가? 이 말씀 속 주님의 뜻을 생각한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틀만 있으면 유월절이다. 그때 인자는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당신의 죽으심을 알리셨다. 제자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여인은 받아들인다. 죽으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다. 어쩌면 귀한 것이라는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슬픈 마음으로 가장 귀하신 분, 주님의 장례를 준비했다. 곧 죽을 자를 위해 쓰는 것은 세상 가치로는 생산성이 없는 행위다. 제자들은 돈을 낭비했으며 아깝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십자가, 즉 별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세상이 좋고 아깝고 떠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을 떠나신다. 본래 그들의 비전과 소원 성취를 위해 오시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세상에서 하늘 아버지께로 이끌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 여인이 받아들인 주님의 별세와 여인의 마음도 전해야 한다. 듣는 자들의 마음도 세상의 소중한 것, 아까운 것들을 떠나 주님의 십자가와 하늘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여전히 세상이 더 좋고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복음의 진실을 모르며 전하지 않은 것이다. 복음은 이 여인처럼 죽으신 주님과 함께 그 마음이 세상의 가치를 떠나 하늘나라에 온전히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예배의 원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따라 내 마음도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사는 것이 참된 예배일 것이다. 오늘 나의 마음은 이 십자가 별세의 복음에 온전히 빠져 있는가? 세상 무엇도 아깝지 않으며 어떤 미련도 없이 오직 하늘 아버지께로 내 마음과 뜻이 향하고 있는가?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이 그 통로인 것을 믿는가?
은혜의 하나님, 부패한 땅의 미천한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십자가 별세 사건을 통해 영원한 나라로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여전히 육신과 세상에 매여 죄와 사망의 길을 가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죽으실 주님을 향해 옥합을 깨고 향유를 부은 이 여인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의미와 능력을 깨닫기 원합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의식하며 영생과 진리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십자가와 부활의 여정에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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