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욥9:11-24)

되어지는대로 2021. 10. 18. 08:46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9:11-24)

 

빌닷에게 욥이 답한다. “네 말이 맞다. 대항할 수 없는 하나님, 논쟁도 재판도 불가능한 창조주께 누가 감히 스스로 의롭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요, 내가 아무리 내가 온전하다 해도 내 입이 내 죄를 증명할 것이네...” 욥도 모든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전제를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자신이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완강하게 주장하는 그의 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 욥의 아내도 복을 누리므로 하나님을 믿었다. 복을 빼앗기자 믿음을 버렸다. 그러나 욥은 환경과 처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는다. 온전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현상의 인과론을 믿기 때문이다. 욥도 이유를 모른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주장할 인생은 없다. 두려운 창조주, 전능하신 분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며 피조물일 뿐이다. 누가 감히 자기 권리를 요구하며 논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자신을 정당화해도 결국 자기 죄를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욥은 억울하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남다르게 하나님을 섬겼다. 그처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뜻에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 창조주를 향한 조건 없는 섬김이 그가 생각하는 그의 의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섭리를 알지 못한다. 무한한 지혜와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주시려는 참된 기쁨의 세계를 아직 깨닫지 못한다. 죄와 사망의 유전자를 받은 자로서 고난의 현실로 인해 낙심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는가? 보이는 것에 따라 낙심하며 슬픔과 고통에 빠지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이시다. 미천한 인생들을 위해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주시고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천국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통해 그 한 없는 사랑을 확증하셨다. 과연 오늘 나는 주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주님 안에서 항상 범사에 쉬지 않고 아버지와 만나 소통하는 참 자녀의 복을 누리고 있는가?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무지하고 어리석은 불평과 원망의 날들을 회개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지 못한 소견과 판단, 근심과 낙심의 삶이 잘못된 것을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하늘 아버지와 충돌하는 세상의 생각들을 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사랑과 지혜를 따라 열어주신 빛과 생명, 은혜와 진리의 길을 바라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하셨으니 그 천국 여정을 따르게 하소서, 온전한 믿음으로 하늘의 평강과 기쁨 안에서 세상의 오늘을 살기 원합니다.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영생과 진리의 길을 걷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