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결말...(눅24:44-53)
누가복음서의 마지막이다. 부활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승천하신다. 그들은 기뻐한다. 늘 성전에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너무 싱거운 엔딩이 아닐까? 사람들은 블록버스터급은 아니라도 화려한 반전이 있는 결말을 원하지 않는가?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셨다. 세상에는 제자들만 남았다. 환경과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의 인생의 비전과 꿈, 소원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기뻐할까? 왜 성전에 머물며 하나님을 찬양했을까? 조용히 전개되는 복음을 생각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록된 예언,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셨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그리스도 사역의 실패도 무능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민족에 예수의 이름으로 죄용서의 회개가 전파될 것이다. 이 모든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 하시며,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기다리라 명하신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소원하며 어느 때에 성취될지 궁금했다. 그러나 주님이 성경 말씀을 풀어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영적인 시야가 열렸다. 이제는 세상과 육신을 향한 소원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향한 소원을 품게 된다.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신 뜻, 사명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사건을 통해 그들 앞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마음은 구원의 하나님, 영광의 창조주를 향한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다. 예수의 명을 따라 돌아가서 주를 찬양하며 기다린다. 십여 일 후, 기도하는 그들에게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제 그들의 정체성과 삶은 이전과 전혀 다르다. 부활의 자리에서 모든 일상을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간다. 생각과 감정, 의지, 모든 말과 행동에서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그 뜻을 의식한다. 그들에게 있음의 느낌, 좋음의 확신, 소원의 추구가 전에는 세상에 있는 대상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늘나라로 방향이 바뀌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삶을 이어가는 새 여정이 시작된다. 이런 제자들의 고유한 삶을 오늘 우리는 잊고 살지 않는가? 과연 오늘 나는 세상의 어떤 것을 의식하고 좋아하며 갈망하는가?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며 오늘을 살고 있는가?
은혜의 하나님,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보존하시며 구원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불신과 반역의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며 영생과 진리의 구원, 새창조의 역사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완악한 자녀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십자가와 부활의 하늘문을 여시고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따라 영광의 여정에 오르기 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께 온 마음을 드리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자녀로 살게 하소서, 오늘도 감사와 기쁨을, 평강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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