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유와 방해 앞에서...(스4:1-10)
고향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찾아온다. “당신들의 건축을 돕겠소. 우리도 당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때문이요. 우리도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앗시리아 왕 때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왔소.” 그러나 거부한다. “당신들은 성전을 짓는 일에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소. 우리는 고레스왕이 명령한 대로 오직 우리끼리 여호와를 위해 그 집을 지을 것이요.” 그들은 건축을 방해한다. 페르시아 왕에게 모함하는 상소를 올린다. 결국 건축은 중단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성전은 순조롭게 완공되었을 것이다. 왜 거부했을까? 하나님은 왜 중단을 허락하셨을까?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앗시리아의 이주정책과 혼혈정책으로 순수한 민족의 정체성을 잃었다. 지방신의 하나로서 여호와를 섬길 뿐이다. 유일신의 믿음이 아니다. 그들의 번제도 참된 번제가 아니다. 신께 올리는 뇌물일 뿐이다. 그들이 돕겠다는 이유는 그 지역에서 자기 지분을 높이기 위함이다. 거절당한 그들은 온갖 방해 공작을 시도한다. 결국 건축은 중단된다. 하나님께서 중단을 허락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전 건축이 믿음의 전부가 아니며, 그들의 마음이 아직 간절히 하나님과 성전을 간절히 소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름다운 솔로몬 성전이 있을 때에도 그들은 타락했고 하나님께 범죄했다. 사명이며 목표인 건축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없다면 성전은 다시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믿음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지역신의 하나로 여기는 세상의 혼합 종교로 전락할 수 없다. 무속신앙과 다름없는 예배를 드릴 수도 없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방해와 핍박 속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며 간절히 구해야 한다, 쉬지 않고 기도하며, 십자가의 주님을 의식하며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 살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거룩을 향한 능력도 자질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의 감동과 은혜로 우리는 천국 자녀의 순전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감사와 기쁨의 삶을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혼돈과 공허, 어둠 속에서 죄와 죽음에 매인 미천한 인생들을 영생과 진리의 자녀로 택하시고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보이는 세상과 육신의 이익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온전한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주를 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전히 이어지는 세상과 육체의 방해와 조롱을 인내하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바라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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