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분쟁이 있다?(고전1:10-17)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 교인들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서로 다툰다. 바울은 분노한다. 나는 바울파를 세우지 않았다며,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 묻는다.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교회에 어떻게 분열과 분쟁이 있을까?
아마 바울파는 바울과 함께 교회를 세운 창립 멤버들일 것이다. 아볼로파는 성경 말씀과 지식을 강조하고, 게바파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그리스도파는 아마도 사회 정의와 활동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열과 분쟁은 그들이 참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드러낸다. 세상의 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주님을 잊고 사람의 판단, 지도자의 의와 영광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하며 성령으로 충만했다면 분열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천국 복음을 증거하며 자신을 내어놓으셨다. 나라의 독립, 조직의 개혁이나 개선을 목적으로 오시지 않았다. 그런 것은 각자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진 후 소명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뜻대로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오히려 세상의 지혜와 판단, 문화 등이 그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교회는 세상에 속한, 세상의 조직이 되고 말았다. 세상과 똑같이 분열과 분쟁을 일삼는다.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서 죽으신 주님을 잊고 세상의 방식과 판단을 내세운다. 자기 생각과 뜻이 충만해서 십자가를 잊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고 누구는 틀렸다는 비난과 정죄를 즐기며 우월함을 자랑한다. 마음이 세상과 육신에 꽂혀서 취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세상의 지혜와 명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린다. 오직 믿음과 소망으로,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 죽은 자의 자아의식으로 악한 세상을 견디며 성령을 따른다. 그러나 우리 역시 세상의 진영 논리로 분열하며, 누군가를 좋아하며 또 누군가는 미워하지 않는가? 오늘 나는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을 내세우는가? 판단과 정죄, 구원과 심판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 아버지께 대해서 살아있는가? 마음은 아버지께 드리고 육신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하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직 아버지의 이름만이 우리 안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아버지의 주권이 삶의 현장에 임하며 그 뜻이 우리 가운데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뜻과 그 은혜가 오늘 우리 안에서 드러나며 우리 마음도 아버지께 닿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성령을 따라 살아낼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소서. 세상의 길과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과 방식을 따르며 그의 나라와 의를,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감사와 기쁨을 놓치지 않으며 마음이 나뉘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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