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믿음과 현실감(삼상14:1-23)
블레셋과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사울 왕과 600명의 군사뿐이다. 블레셋의 군사들은 모래알처럼 많다. 요나단과 종이 허락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군법회의에 회부될 무모한 행동이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이다. 바보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본다.
요나단이 종에게 말했다. “이리 와서 저 할례받지 않는 사람들의 부대로 가자. 여호와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 답한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저는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이 대화로 추측해 보면, 사울과 군사들은 요나단과 의견이 달랐던 것 같다. 600명 중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 싸우자고 한 사람은 요나단뿐이었다. 사울 왕은 그런 믿음이 없었을까? 물론 서울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숫자와 상관없이 승리할 것을 믿는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후손 아히야를 데려와 에봇을 입혔다. 법궤까지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적의 위세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눈앞의 현실에 절망한다. 어쩔 줄을 모른다. 하나님의 능력을 동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요나단의 마음은 다르다. 살아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현실이다. 그는 할례받은 자로서, 전능하신 주 앞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보이는 상황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종도 같은 믿음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싸움에 나선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에 응답하셨다. 적진은 공포와 대혼란에 삐졌다. 흩어져 도망친다. 사울과 요나단의 차이는 삶의 현장에서 주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관한 현실감이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앞에 자신이 서 있으며, 그 뜻을 따라 행동한다는 믿음이다. 후에 다윗도 골리앗과 싸움에서 동일한 믿음을 보인다. 오늘 우리는 어떤 현실을 사는가? 세상의 문제 앞에서 낙심하며 근심하는가? 과연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육신에 묶인 자아가 죽고 오직 하늘 아버지를 향한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전능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가 주의 것이며 생사화복도 주의 손 아래 있습니다. 원하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심을 믿습니다. 요나단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택하신 성도들에게도 영의 눈과 귀를 열어 참된 현실을 깨닫게 하소서.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며, 주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며 이 땅에서도 뜻을 이루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영광을 보며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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