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사울, 자살의 변명?(삼상31:1-13)

되어지는대로 2023. 3. 31. 06:24

사울, 자살의 변명?(삼상31:1-13)

 

   이스라엘이 패했다. 사울도 상처를 입고 쫓긴다. 종에게 명한다. “네 칼로 나를 찔러라. 그러지 않으며 저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이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렵구나.” 종은 그를 죽이지 못한다. 사울은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서 죽는다. 자살하며 그는 할례를 언급했다. 분명히 그도 할례받은 선민이다. 그 자존심으로 죽는 것도 믿음인가?

 

  사울은 성실하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고 그와 함께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좋은 것들, 그 영광에 취했다. 세상을 기뻐하며 마음에 품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자기 생각과 느낌으로 옳음과 좋음을 판단했다. 말씀이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행했다. 아말렉의 왕, 재물 등을 멸하지 않고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사울과 다윗은 동일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다. 왜 사울은 실패했을까? 그에게는 다윗처럼 오랜 고난과 인내, 연단의 과정이 없어서일까? 그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사를 드렸다. 선민의식으로 무장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과 자기를 사랑하며, 대중 앞에서 누리는 권세와 명성 등으로 만족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있음과 좋음, 그의 영원한 나라와 주권 등 하나님 중심의 영적 환경을 자기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세상과 육신에 종속된 채 끝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르지 못했다. 하나님의 주체성보다 자기 주체성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선민의 기회, 즉 보이는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기뻐할 수 있는 특권을, 믿음으로 얻는 영생의 기회를 놓쳤다. 사실 이것이 선악과를 취해 죄와 사망을 선고받은 인류의 현실이 아닐까?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았는가? 선민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세상에 대한 내 주체성의 죽음임을 고백하며 온 마음을 드려서 주님과 함께 부활과 승천, 보좌 우편의 자리까지 올라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사와 주 예수를 향한 소망의 인내, 그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온전한 믿음, 참된 구원의 여정에 오를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마음에 가장 좋고 소중하고 거룩한 이름이며,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아버지의 나라와 주권이 드러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우리 인생 여정에서도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삶을 위해 오늘도 일용할 양식과 건강을 허락하시고 아버지의 뜻에 빗나가며 손해를 끼치는 죄를 사하시고, 세상과 육신의 시험에 들지 않으며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마음은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고 육신의 삶으로는 기쁘신 뜻을 이루며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