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사익을 얻으려는 사람들(행19:11-22)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며 주의 말씀을 가르쳤다. 선교 여행 중 가장 긴 기간을 그곳에서 사역했다. 전도자 바울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소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이 세워진다. 초월적인 능력도 나타났다. 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났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러나 왜곡된 믿음, 즉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세상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도 나타난다. 대제사장의 일곱 아들의 사건을 예로 든다.
사방을 다니며 귀신을 쫓는 유대인들이 있다. 주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으나 그 이름을 도용했다. 대제사장이라 칭하는 자의 일곱 아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려 했다. 그러나 귀신이 외쳤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냐?”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도망쳤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였다.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마술과 주술에 의존하던 죄를 고백하며 그런 책들을 가져와 불태웠다. 불태운 책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 가치가 엄청났다고 기록한다. 에베소는 그처럼 우상과 마술, 주술이 만연한 도시였다. 세상과 육신의 형통을 위해서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며 그 도시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미신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 사이에 지식인 아볼로의 등장과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즉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등을 차례로 언급한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에 마음을 쏟으며 자기 영광을 구하던 나를 돌이켜 하늘에 계신 주께 온 마음을 드리며 하늘의 평강과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생략하며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서 사익을 구하는 왜곡된 믿음도 나타난다. 십자가의 예수를 버리고 기적과 위로, 언약의 예수만을 취하는 신자들도 있다. 그러나 육신의 만족을 원하며 추구하는 믿음은 십자가의 예수를 따르는 믿음이 아니다. 위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을 생각하며 소원한다면 여전히 십자가의 원수로 남는 것이 아닐까? 과연 오늘 나는 인자의 몸으로 세상에 와서 버림받고 죽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하늘로 돌아가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의 의미와 참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들 예수의 그리스도 사역으로 사망의 땅에서 구원하시며 영생과 진리의 길로 이끄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죄에서 돌이킨 바울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와 선하심을, 그 주권과 영광을 계시하심을 믿습니다. 부패한 세상과 육신의 시험에 들지 않기 원합니다. 세상을 탈출해 하늘에 이르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버리고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려는 죄에서 구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오직 아버지께 있습니다. 오늘도 그 믿음과 소망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며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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