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고 사건의 의미?(행20:1-12)
드로아에서 바울이 말씀을 전했다. 다음날 떠나야 해서 밤늦게까지 강론한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다락방에서 유두고가 말씀을 듣는다. 졸다가 난간에서 밖으로 떨어졌다. 죽었다. 소동이 벌어졌다. 바울이 다가갔다. 그를 안으며 말한다. “소란 피우지 마시오. 그에게 생명이 있소.” 그는 살았다. 날이 샐 때까지 강론을 계속했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려가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보통은 바울이 그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사로나 다비다 등 죽은 자를 살릴 때와 다르다. 바울은 살리는 기도나 말을 하지 않았다. 청년에게 생명이 있음을 알았을 뿐이다. 이 사건의 의미를 생각한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주의 말씀을 전했다. 병을 고치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사람이 죽는 경우는 처음이다. 결국 바울과 교회가 책임져야 할 사망 사고가 아닌가?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허락하셨을까?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마 의사인 누가가 제일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그가 봤을 때 청년은 이미 죽었다. 사람들은 큰 소란을 일으켰다. 바울은 제일 먼저 주께 물었을 것이다. 답을 듣고 그가 죽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은 청년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셨다. 그에게 생명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드로아의 신자들은 다시 바울을 볼 수 없다. 바울은 그들에게 돌아올 수 없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고 로마로 이송될 것이다. 소아시아 쪽으로는 오지 못하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이 그들에게 마지막 밤이었다. 그 청년의 실수는 결국 그들에게 주의 은혜와 믿음의 기억을, 위로를 주시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누가는 드로아의 신자들이 그 청년으로 말미암아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원어로 위로는 곁으로 부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곁으로 부르고 계심을 항상 잊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은 보이는 사건과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먼저 하나님의 생각을, 그 뜻을 물었다. 답을 듣고 계속 은혜의 말씀을 전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의 사건, 사고들 앞에서 분노와 흥분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가? 소동에 휩쓸리며 함께 분노에, 혼돈과 낙심에 빠지지 않는가? 과연 우리는 바울처럼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생각, 그 뜻을 듣고 있는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 전도자의 수고와 말씀을 갈망하는 신자들을 기억하시며 위로와 은혜를 베푸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연약하며 여전히 세상은 그들을 배척합니다. 마음을 다한 하나님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늘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좋으심을, 그 주권과 영광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믿음과 소망, 사랑과 위로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하늘의 아버지와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감사와 기쁨과 기도로 오늘을 채우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공부와 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5-38) (0) | 2023.08.11 |
---|---|
홀로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행20:13-24) (0) | 2023.08.10 |
선동과 군중심리...(행19:23-41) (0) | 2023.08.08 |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사익을 얻으려는 사람들(행19:11-22) (0) | 2023.08.07 |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으니...(행18:9-17) (0) | 2023.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