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그들을 찾아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왕상20:13-25)

되어지는대로 2024. 5. 23. 06:06

그들을 찾아와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왕상20:13-25)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무능하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셨다. 말씀을 전한다. “이 엄청난 군대가 보이느냐? 오늘 네 손에 이들을 주리라. 그러면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 승리를 주겠다고 하신다. 이유는 하나님이 너희의 주 여호와인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아합이 방법을 물었다. 고관들의 아들들을 앞세워 칠천 명의 군사로 먼저 공격하라 하셨다. 턱없이 적은 숫자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서 공격한다. 당황한 적들은 쓰러지고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둔다. 이 전쟁의 특별한 의미를 생각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대부분 주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며 얻는다.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주께 부르짖으며 구원을 간청해야 한다. 그러나 아합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완악하고 무능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들을 지지하거나 용서하신 것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가르치려 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은혜의 말씀으로 함께하며 영생의 길로 이끌려 하신다. 그러나 사람은 은혜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세상과 육신의 소리에 마음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아합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선지자를 찾으며 구원을 간절히 청했다면 그는 굴욕적인 항복을 생각하며 걱정과 염려, 두려움에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엘리야도 갈멜산 승리 후에 이세벨의 반응에 마음을 쏟다가 주의 음성을 놓치며 이세벨의 협박을 우뢰소리처럼 크게 듣지 않았던가? 필요 없는 낙심과 좌절에 빠져 광야로 도피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며 생각하고 계신다. 잘못할 경우까지 예상하시며 모든 수를 가지고 대응하신다. 선민의 빗나간 경로를 재탐색하시며 새 말씀을 주신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세상과 육신의 소리는 작아지며 하늘의 음성이 마음에 크게 들려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곧 별세와 부활과 승천에 참여하는 삶이 아닐까?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길을 여신 주님 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접속하며 소통하는 삶이다. 오늘도 허락하신 주의 말씀과 십자가의 길을 의식하며 그 은혜의 여정에 오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들 예수를 통해 영생의 자녀로 부르시며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시며 사랑하시며 권능의 주이심을 믿으니 염려와 두려움이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아버지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육신의 생각과 판단에 미혹되지 않으며 아버지의 생각과 뜻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기쁘신 뜻대로 항상 기쁨, 쉬지 않는 기도, 범사에 감사하는 삶으로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