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그들이 소중한 이유(느12:1-21)
1차 귀환 때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언급한다. 오래전에 돌아온 그들의 족보와 이름을 새삼 열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맥을 따라 그들의 중요성을 생각힌디.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와서 성벽을 재건했다. 기득권자들의 반대와 모함을 견디며 성벽을 완성했다. 그러나 바로 성벽 봉헌식을 하지 않았다. 제사장이며 학사인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조상의 역사를 가르치며 회개 운동을 시작했다.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유일하게 창조주의 택함을 받고 언약까지 맺은 선민들이다. 지금은 나라를 잃고 황폐한 땅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다. 그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주와 맺은 언약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을 향한 불신, 불순종의 범죄로 징계를 당했다. 그러므로 이제 언약을 갱신하며 순종을 맹세한다. 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기로 다짐한다. 그것은 성전과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가능하다. 사람들은 풍요와 번영, 곧 돈과 권력, 명성 등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를 얻으며 만족과 기쁨을 추구한다. 그러나 선민은 다르다. 성벽은 그런 세상과 육신 중심의 가치관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세상의 요구와 영향력에 벽을 세우는 것이다. 세상의 영광을 등지고 늘 성전, 곧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그들은 성전 예배와 말씀을 생활화하는 몸으로 모든 현장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장, 레위인 등이 필요하며 중요하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는 그들, 매일 상번제를 드리며 순종하는 그들의 도움으로 나머지 백성들도 하늘의 주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각자 자기 삶의 현장에서 거룩을 생활화하며 그 은혜와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제사장 등은 그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다. 나라가 망하고 대부분 바벨론에 끌려갔다. 그 후손들이 돌아왔다. 가문의 신앙과 소명을 깨닫고 헌신하기 위해 조상들의 약속의 땅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은 신앙 공동체를 재건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 레위인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재건과 부흥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명자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부패한 육신이다. 결국 세상과 육신의 미혹에 걸려 타락한다. 그처럼 전적인 부패와 타락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새 언약의 주 예수의 그리스도 사역, 곧 십자가 연쇄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제 그 십자가에 연합한 성도들은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으로 부름을 받는다. 그러나 십자가를 생활화하며 마음을 하늘 아버지께 온전히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성도도 제사장도 아니다. 믿음을 자기 뜻을 위해 종교로 택한 종교인일 뿐이다. 과연 오늘의 신자들은 세상에서 돌아와 마음에 성벽을 세우고 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하늘의 가치관, 곧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이 시대의 제사장들로 살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상과 육신의 포로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영생과 진리의 나라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별세와 부활, 승천과 우편의 주님 안에서 우리도 하늘의 장자로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하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있고 정하신 소명이 있음도 믿습니다. 오늘도 돌아온 믿음의 사람들, 그 이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기도를 쉬지 않으며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그 영광을 바라보며 찬양하게 하소서. 영원히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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