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와 큐티

환난에서 나오는 성도들(계7:9-17)

되어지는대로 2024. 12. 2. 05:56

환난에서 나오는 성도들(7:9-17)

 

   요한이 보니 흰옷 입은 큰 무리가 보좌의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양하며 경배한다. 장로 중 하나가 말한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양하는 무리는 구원을 이룬 성도들이다.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다. 그들이 나온 환난을 생각한다.

 

   큰 환난은 큰 고통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잃을 때 고통을 느낀다. 그러므로 가장 소중하며 사랑하는 대상을 잃는 것이 큰 환난이다. 덜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것은 작은 환난이다. 그러므로 상실감의 대상에 따라서 환난과 고통의 수준도 다르다. 물론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환난도 서로 다르다. 은혜로 택하심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을 가는 성도에게 큰 환난은 당연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에서 잃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돈이나 권력, 명성. 건강 등 세상과 육신의 것을 잃을 때 환난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 것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 이후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죄와 죽음의 저주에 갇혀 있다. 이미 인류는 큰 환난 속에 살고 있다. 그 상태에 익숙하며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도라면서 돈, 명성 등 세상 가치의 존재감과 좋음에 취해서 그런 것을 잃을 때 큰 환난으로 느낀다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세상의 좋은 것들이 많아질 때 오히려 성도에게는 그것이 믿음의 환난이 아닐까? 온전히 믿는 자라면 곧 십자가의 주님께 가서 그런 것들을 믿고 의지하는 타락한 마음을 그의 피로 씻을 것이다. 바로 그가 환난의 세상에서 나오는 성도가 아닐까?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어린양의 은혜로 기뻐하며 찬양할 것이다. 주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길 것이다. 그것이 구약의 성전과 상번제의 생활화이며 신약 시대 참 성전이신 예수의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삶이다. 주는 장막을 치시며 그와 함께하신다. 다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며 해를 입지 않는다. 눈물을 씻어주시며 생명 샘으로 이끄신다. 그러나 저주받은 땅에서 몸으로 사는 동안에는 시험과 환난을 피할 수 없다. 죄와 저주에 매인 육체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어린 양 예수의 죽음. 그 피가 필요하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그 피로 죄에 젖어 찌든 마음을 씻어내야 한다. 세상에 매여 집착하는 죄인 된 자아가 죽어야 한다. 육체를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 그러면 어린양 주님 안에서 마음이 하늘의 아버지께 오르며 그 영광을 찬양할 것이다. 마음은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지상의 몸에는 그 주권이 임하고 그 뜻이 성취될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성도에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이 아닐까?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이 흘리신 피로 마음의 더러움이 씻겨지고 저주받은 땅의 환난에서 나오며 흰옷 입은 성도의 복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 어린양 주님의 은혜로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건져 생명과 진리의 자리로 옮기시니 감사합니다. 저주받은 땅에서 환난을 피할 수는 없으나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여전히 십자가의 주님을 놓치고 육신의 영광을 바라며 실패를 반복하지만 끝까지 돌보시며 돌이키실 것도 믿습니다. 오늘도 환난에서 나와 주를 찬양하는 흰옷 입은 성도의 무리에 들기 원합니다. 성령을 허락하소서. 하늘의 평강과 기쁨을 놓치며 세상과 육신의 환난에 머물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